한국일보

사모들의 재능

2003-08-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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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모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개척교회를 하면서 주일학교 교사가 부족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몇몇 부인들이 “다른 교회에서는 사모님이 부엌일을 책임지고 잘 하는데 왜 우리 사모님은 부엌일을 통 안하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의 말이 귀에 들어왔단다. 그렇다면 대체할 다른 교사가 없는데도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여집사님들이 잘하고 있는 부엌에 들어가서 부엌일을 꼭 해야만 하느냐고 울면서 호소한다.
첫 목회지에 있을 때 나 역시 이런 비슷한 경험을 했던 고로 그 사모님을 너무도 잘 이해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이랬다. 교인들과 이야기하고, 새로 온 교인들을 영접하고, 오랜만에 보는 교인들을 반갑게 대하고, 이런 일에 동분서주하고 있는 나에게 누가 다가오더니 “사모님은 왜 부엌에 안 들어가냐고 말들을 하는데요.”“예? 부엌에를요?” 이분들이 내가 설거지 도사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거, 참-. 이 몸을 하나님께 내놓은 터에 설거지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그 말을 듣자마자 당장에 부엌으로 가서 “자, 여러 집사님들은 다 나가셔서 나 대신 교인들을 좀 돌보시지요. 이 정도의 설거지는 저 혼자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소매를 걷어붙이고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그릇들을 손 빠르게 순식간에 깨끗이 씻어 엎어놓고 여유만만하게 그릇들을 닦고 있노라니까 나갔던 여집사님들이 한 사람씩 들어오더니 눈이 휘둥그레져서 “사모님, 그릇 닦는 일은 우리들이 할테니 그만 나가시지요.” 못이기는 척 하고 떠밀려 나온 이후로 다시는 부엌 운운하는 일은 없어졌다.
이 기회에 모든 교회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사모들이 자유로이 자기 재능대로 봉사할 수 있게 문을 활짝 열어달라는 거다. 사모들 중에는 부엌일을 즐겨하시는 분도 계시고(못 말린다) 꽃꽂이, 아이 돌보는 일, 찬양, 반주, 가르치는 일, 교인들 돌보는 일, 상담, 간호, 장식 등.... 어떤 분은 가만 계시기만 하는 분도 있다. 남편인 목사님 한 분만을 잘 보살피는 재능을 갖고 있는 분이다. 그러니 제발 사모님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 찧지 마시고 각자 알아서 나름대로 봉사할 수 있게 가만 내버려두시기 바란다.
우리 교회 자랑을 좀 해야겠다. 17년 전 이 교회에 처음 왔을 때 앞선 경험도 있고 하여 먼저 부엌부터 들러 신고식(?)을 하려고 얼쩡거렸더니 대단해 보이는 여집사님들이 쫘악 진을 치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대뜸 “사모님이 여긴 뭣 하러 들어왔어요? 오히려 걸리적거릴 것 같으니 나가주시면 고맙겠사와요∼. 우리들의 잡을 뺏지말아 주세용∼.”
이분들 덕분에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재능, 가르치는 일과 교인들 돌보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나는 안다. 언젠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말없이 부엌에서 봉사했던 우리 여집사님들의 상급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또 이런 말씀도 있다.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신 은 실
(오렌지카운티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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