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한국 교회와 구제

2003-08-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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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교회는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가장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교회가 교회의 본질적 과제에 대해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교회는 흔히 예배, 기도 그리고 전도는 교회의 본질적 과제이며 영적 차원의 일이고 구제는 부차적 과제이며 윤리적 차원의 일이라고 생각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일을 소홀히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잘못된 것으로 성경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주는 것이 영적인 일이며 참 경건으로서 교회가 해야할 본질적 과제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었던 야고보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고 기록하고 있고, 이사야 선지자도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고...”(사 58:6-7)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한 번은 어느 부자가 예수님께 찾아와 심각하게 물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은 놀랍게도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도 가난한 자들을 돕는 구제가 단순히 윤리적, 도덕적 차원의 일이 아닌 영생에 관계된 영적인 일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교회(또는 신자)는 어떤 자세로 구제하여야 하는가?
첫째 구제의 자세는 예배의 자세와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구제는 사람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하는 것이고,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교회의 형편에 관계없이 주고 도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제는 교회가 성장하고 교회 밖으로 쓸 재정적 여유를 갖추었을 때 시작하는 사역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교회들의 현실은 소위 “교회 비전”이라는 명목 하에 교회 건축, 기도원 건축에 밀려 늘 미래의 관심 사역으로만 자리 매김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교회는 이제 외형적 교회 성장의 우상과 정통주의의 허상에서 벗어나 정말 믿음의 본질적 과제가 무엇인지 재고하고 지금이라도 예배와 기도, 선교 뿐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고 주고 베푸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교회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장춘원 목사(시카고 뉴라이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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