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꽃 각시

2003-08-08 (금)
크게 작게
우리 교회에 등록하여 주일 날 출석하시는 분은 아니지만 하루 새벽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에 나오시는 권사님이 계신다. 칠순을 넘기신 지도 몇 년이 되셨으니 이제 팔십을 향하여 급히 걸음을 옮기고 계시는 분이시다.
나는 그분을 표현할 때는 ‘꽃 각시’라고 한다. 육십 중반쯤으로 보이는 그분의 얼굴 피부는 어린애기보다 더 부드러워 보인다. 뵈는 시간이 새벽이라 언제나 화장기 없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꽃 각시’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치 곱다. 평생을 고생하고는 이웃사촌도 해 본적이 없으셨을 것 같은 그분의 지난 삶을 들으면서 과연 ‘나는...’하고 생각해 본다.
33세의 꽃보다 더 예쁜 그녀를 두고 남편은 이 세상을 떠났단다. 아니 그녀만 두고 간 것은 아니었다. 2남4녀라는 자녀를 그녀에게 몽땅 맡겨놓고 뒷걸음 한번 치지 않고 가 버렸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중풍으로 쓰러져 기동조차 어려우신 시모님을 덤으로 남겨 주셨단다.
그리고 오늘까지 40여년을 그 자녀들을 양육하여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들로 만들기까지의 눈물 골짜기를 그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호주에 살고 있는 딸이 50줄에 들어서면서 갱년기 장애와 오십견으로 고통을 받는대요. 그러면서 내게 물었어요. 엄마도 그 때 얼마나 힘들었느냐고요? 그래서 내가 그랬지요. 나는 갱년기 장애도 오십견도 몰랐다고. 아이들 키우고 입에 풀칠해야 하고 언제 갱년기 타령할 여가가 있었겠느냐? 그랬어요” 그런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코끝이 짜르르 정전기가 일어났다. 자녀들은 호주에 한명, 미국에 다섯 명이 살고 있고, 목사의 아내로, 간호사로, 비즈니스맨으로 성공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셨다.
평생을 우울하게 지내시지 않고,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셨다고 하셨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청춘과부로 이 나이까지 왔음을 믿는 사람이 없다고 하셨다. 정말로 그 연세에도 그 분은 밝고 맑고 투명하고 따뜻하고 반짝여서 어디에 있어도 빛나는 수정 구슬 같으신 분이다.
오늘 새벽기도를 다녀오는 차안에서(우리 부부가 pick-up을 한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내아들 전화가 나를 얼마나 섭섭케 했는지 지금도 가슴이 아프네요. 글쎄 이러는 거예요. ‘엄마 - 우리 키우느라 고생 많았고 참 고맙다’고 하면서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지금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건데’ 이러는게 아닙니까? 물론 알지요!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살았으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란 걸요. 아버지 몫까지 하려고 몸부림쳤던 옛날들이 생각나면서 너무너무 섭섭해요, 물론 나 섭섭하라고 한 말이 아님을 알지만요.”
그 분은 울먹이고 있었다. 자식이 죽었다 깨어나도 부모의 맘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하물며 인간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심정이야!

최 미 화
(아름다운 동산교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