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화의 추억’ 넘쳐나는 LA의 명소

2003-08-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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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봉관 「뉴 베벌리 시네마」

지난 주말 김동훈씨(65)와 김혜자씨(59) 부부는 ‘로마의 휴일’을 보러 LA의 뉴 베벌리 시네마(New Beverly Cinema)를 찾았다. 그가 처음 ‘로마의 휴일’을 봤던 것은 1957년 단성사에서였다. 50여 년의 세월 동안 오드리 햅번과 그레고리 펙은 유명을 달리하고 그의 얼굴에도 시간의 자취가 남겨졌지만 영화 속 앤 공주와 신문 기자 조는 주름 하나 생기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인 것이 신기했다.

24시간 동안 로마 시내를 함께 돌아다니며 애틋한 감정을 갖게 된 두 주인공이 헤어지기가 안타까워 서로의 입술을 포개는 장면은 20대 청년일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그의 가슴을 헤집어 놓는다. 영화관에는 김동훈씨 부부 말고도 많은 이들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그레고리 펙을 추억하며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그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백발의 할머니는 50년 전 과연 누구와 어디에서 ‘로마의 휴일’을 보았던 걸까. 메이트릭스 팬이 더 어울릴 법한 젊은이들도 부모님들이 데이트하며 보았다던 로마의 휴일을 직접 보기 위해 티켓을 끊는다.



지난 주말 ‘로마의 휴일’과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을 상영작으로 올렸던 뉴 베벌리 시네마는 남가주의 유일한 리바이벌 영화관으로 LA의 명소. 주인인 셔먼 토건(Sherman Torgan)이 1978년에 인수, 재개봉관으로 오픈 했으니 올해로 꼭 25주년을 맞는다. 그가 뉴 베벌리 시네마를 오픈 할 당시만 하더라도 LA 인근에는 약 12개 정도의 리바이벌 하우스가 있었다. 다른 극장들이 모두 개봉관으로 바뀌거나 없어졌지만 베벌리 시네마만은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밤 부엉이 체질인 그는 이른 아침 시간에 시작하는 비즈니스 말고 뭔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사업을 하고 싶어했다. 사람들 얼굴에 미소를 실어주는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그의 이런 바람에 꼭 들어맞았다. 이전에도 극장이었던 뉴 베벌리를 인수한 그는 1978년 5월 5일 첫 동시상영작으로 말론 브란도 주연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올렸다.

그는 특정 감독 또는 어떤 배우의 작품 두 편을 상영하는 프로그램을 머리를 싸매고 짜낸다. 프로그램을 인쇄해 배포하고 영화사에서 프린트를 예약하고 티켓을 판매하는 일 모두를 그는 혼자서 꿋꿋하게 해내고 있다. Casablaca를 상영할 때면 백발의 노인이 다가와 처음 그 영화를 본 것이 언제 어디서였는지를 장황하게 늘어놓지만 그는 지겨워하지 않고 귀를 기울여 들어준다.

다른 극장들이 THX 등 최첨단 음향 기기와 프로젝션 시설을 갖추고 갓 쏟아져 나온 블럭버스터 무비로 관객들을 끌어 모으는 데 반해 이곳의 시설은 허술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다. 약 300석의 좌석은 최근 한 번의 보수 작업이 있었지만 아직 불편하다. 특히 맨 앞줄 중간쯤의 의자는 용수철이 튀어나와 자리를 잘못 잡고 앉았다가는 영화 내내 가시 방석에 앉은 느낌.

화면 크기도 작아 때론 양쪽 끝 화면이 잘려나가기도 한다. 오래된 필름에서는 동네 동시상영관에서처럼 비가 죽죽 내린다. 사운드는 웅웅거려 에코 효과라도 낸 것 같다. 필름이 돌아가며 별이 나오는 Feature Presentation 애니메이션은 정말 영화의 메카 할리웃에 있는 극장의 것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옹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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