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호프를 남긴 호프

2003-08-0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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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중국을 방문하면서 세계 8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만리장성을 가 보았습니다. 긴 성벽을 따라 올라가는데, 그 안 벽에 사람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곳에 관광 왔던 사람들이 자기가 그곳에 왔었다는 것을 남겨 놓기 위해서 각자의 이름을 써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각 나라 말로 새겨 놓았는데, 한글로 새겨진 이름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관광지나 공공 건물 벽에 이름을 새긴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의 흔적을 이 세상에 어떻게 남기느냐는 것입니다.
일제 시대 때 젊은이들의 민족 교육에 앞장섰던 오산학교의 교장, 조만식 선생님은 우리가 남겨야 할 삶의 흔적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삶의 흔적은 눈물과 땀과 피를 흘려서 이 땅 위에 성실하고 위대하게 살아간 흔적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눈물이란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랑이요, 땀은 생존자체 보다는 높은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피는 몸을 바쳐 피를 흘리는 희생정신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간에 이렇게 사신 분 하나를 잃었습니다. 올해 100세의 일기로 우리들의 곁을 떠난 스타 중의 스타인 밥 호프씨의 타계 소식은 미국 시민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은 위대한 시민을 잃었다 라고 애통해 했습니다.
영국에서 태어난 밥 호프씨는 우리들처럼 이민 1.5세 입니다. 연예인으로서 한결같이 한 길을 걸어온 그는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상패와 훈장을 받았고, 그의 이름을 딴 길, 광장과 빌딩이 여럿이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호프씨의 모습은 장병 위문 공연입니다. 2차 대전부터 시작된 그의 위문 공연은 한국전, 베트남전을 거쳐 지난 걸프전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평생 전쟁터와 해외 군 기지들을 방문한 거리를 모두 합친다면 900만 마일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호프(Hope)씨는 공포와 위험이 있는 곳을 찾아 웃음과 조크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Hope)를 선사한 멋쟁이 입니다. 정말 호프씨는 자기 이름 값을 충분히 한 희망의 전도사였습니다. 호프씨, Thanks for the Memory.

이 성 현
(글렌데일 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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