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재철 목사의 짧은 글 긴 여운

2003-08-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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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글러브

여간해서 부탁을 하지 않는 셋째 승윤이(중1)가 하루 저녁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엔 아빠와 함께 야구도 하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게 너무 오래 된 일이라, 이젠 기억조차 잘 나지 않아요. 아빠 시간 있으실 때, 다시 저랑 야구 한번 해 보면 안 될까요?”
그러고 보니 제가 스위스로 떠난 98년이래 아이들과 공놀이를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예전에 쓰던 글러브는 아직 그대로 있니?”
저의 물음에 승윤이는 벌써 없어졌노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승윤이와, 기회가 되면 글러브를 구입하여 함께 야구놀이를 하기로 약속했습니다만, 바쁜 일정에 쫓기다 보니 마음만 있을 뿐 실천은 하지 못했고, 자연히 승윤이와의 약속은 차일피일 미루어지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뉴욕엘 갔습니다. 귀국 전날 저녁 약속 장소로 이동할 때였습니다. 저를 태우고 가던 성도님이 잠시 스포츠용품점을 들러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무슨 볼 일이 있나 보다 했으나, 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전날 밤 잠자리에 들었는데, 불현듯 제 아이에게 야구 글러브를 사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그분을 사로잡았답니다. 아니, 웬 야구 글러브?-느닷없는 생각에 자신도 이상하게 여겨져 고개를 가로저어 보았지만, 날이 밝아 아침이 되자 야구 글러브에 대한 그분의 마음은 더욱 확고해지기만 했습니다. 그것이 저와 함께 저녁모임 장소로 향하던 중 자동차를 스포츠용품점으로 몬 까닭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굳이 사양하는 제 의사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야구 글러브 2개를 구입하여 제게 건네주었습니다.
제가 승윤이와 약속한 곳은 서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저를 대신하여, 서울의 정반대편인 뉴욕에서 그 성도님을 도구 삼아 승윤이와의 약속을 지켜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으로부터 건네 받은 글러브는 단순히 야구 글러브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섬세하고도 따스한 주님의 손길이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께서 이런 분이심을 믿고 계십니까?
-홍성사, ‘쿰회보’(2002년 7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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