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마 ‘생명의 에너지’솟아나는 ‘드라마’게임

2003-08-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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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들 시각은 삐딱하지만…

‘수상이 되기보다 더비에 출주하는 말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윈스틴 처칠의 발언은 경마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에 무게를 싣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마장을 찾은 것이 처칠의 명언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 주말 개봉된 영화, ‘시비스킷(Seabiscuit)’은 3명의 불운한 사나이가 시비스킷이라는 경주마를 조련해 각종 대회를 승리로 이끄는 감동의 드라마. 경제 공황 시기, 몰입할 무엇인가가 필요했던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줬던 시비스킷은 실존했던 경주마다. 기수 레드 폴라드와 준마 시비스킷이 펼치는 샌타아니타 경마장 레이스 장면의 환호는 경마를 영화에서 끄집어내 살갗으로 경험하고 싶은 이벤트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인들의 경마를 보는 시각은 다소 삐딱하다. 뚝섬과 과천 경마장은 변변한 직업도 없는 실업자나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경마장 주변에는 의례 집문서나 땅문서를 경마에 날렸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마의 역사가 인간이 말을 길들이고 사육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딧세이’에 고대 경마에 대한 서술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원전 776년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23회 체전에는 사륜마차경기가, 그리고 33회 때에는 처음으로 기수가 말에 탄 경마가 등장했다. 그 뒤 그리스에서 로마로,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발전된 경마는 사실 돈 많은 귀족들 사이에서나 즐기던 고급 레저였다. 현대 경마의 기원이 되는 더비 경마는 귀족들이 소유한 4살 짜리 암말들의 1,600미터 경주로 1780년 처음 열린 이후 현재까지 그 원형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 경마는 전세계로 보급돼 미국·영국 등 100여 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운이 작용한다는 면에서 도박성을 띠지 않는 것은 아니나 실제 경마는 고도의 연구를 필요로 하는 정신적 게임이다. 사물과 사건의 이치를 분석하기 좋아하는 성격의 소유자라면 아마도 경마가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도 있겠다. 1달러의 마권으로 8,800달러의 배당금을 받은 경험을 갖고 있는 경마 애호가와 함께 한 ‘로스 알라미토스(Los Alamitos)’ 경마장 나들이는 여러 면에서 신선한 체험이었다. 이 경마장은 다른 곳과는 달리 1/4마일(350야드) 길이의 단거리 야간 레이스를 매일 저녁 실시하고 있다.

주말 저녁 로스 알라미토스 레이스 코스에는 레이스를 즐기러 온 가족, 친구, 연인들로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난다. 박진감 넘치는 말들의 레이스, 주먹을 쥐고 목소리 높여가며 응원하는 사람들, 승리의 환호와 박수 소리는 생명의 에너지를 전달해준다.

동행한 경마 애호가가 레이스에 출전한 말들이 관중들 앞에 행진하는 장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눈을 가린 말, 다리에 붕대를 감은 말, 갈색 말, 검은 색 말, 얼룩덜룩한 말, 경마장에 온 사람만큼 레이스에 출전한 말들도 참 가지가지다. 그는 말들이 행진을 하는 짧은 시간 동안 말들의 성격과 건강 상태, 컨디션을 파악해낸다. 유난히 히힝 거리며 고개를 흔드는 말들은 주의가 산만하고 성격이 거칠기 때문에 그의 베팅 대상에서 제외된다.

입구에서 구입한 프로그램은 경마에 있어 교과서 격. 출전한 말의 이름과 나이, 전적과 승률은 물론 기수와 트레이너에 관한 정보가 빼곡 적혀 있다. 다음 번 레이스까지의 30분 남짓한 시간은 사실 이런 정보들을 분석하기에도 부족하다. 8번째 레이스에 출전한 6마리의 말은 2002년도 챔피언이었다는 Drop Your Sox, 레이크 포리스트 핸디캡의 승자였다는 DDF De Great Saiga 등 만만찮은 말들.

분석해야 하는 것은 말의 히스토리뿐만이 아니다. 경마란 마주와 트레이너, 기수와 말이 함께 만들어 가는 사중주. 25퍼센트의 승률을 갖고 있는 트레이너 Paul Jones가 조련했다면 아무리 야생마라도 다크호스로 떠오르지 않을까. 더욱이 그가 조련한 IB Snow의 기수는 26퍼센트의 승률을 갖고 있는 라몬 산체스.


모범 답안 알려주듯 자신들이 1,2,3위로 찍은 말의 이름을 발표하는 ‘에드 버가트(Ed Burgart)’는 DDF De Great Saiga를, 그리고 ‘프로페서 지(Professor G)’는 Schergo를 위너로 예상했다. 그들의 예상은 비교적 잘 들어맞는 편. 그들의 예상대로 베팅을 할 경우 다른 사람들도 그대로 베팅을 한 지라 배당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럴 경우 2등과 3등을 함께 맞추면 배당금은 상상외로 커진다.

선무당 사람 잡는다고 아무 것도 모르면서 1등과 2등을 찍어 2달러 짜리 마권을 구입했는데 으악! 내 말이 1등으로 들어온다. 악! 2등도 맞췄다.
손뼉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열광하느라 머리 아프던 것도 잊는다. 기계로 가서 배당금액을 알아보니 22달러 40센트. 순식간에 10배가 넘는 돈을 번 것이다.

물론 상금을 땄다는 사실도 기뻤지만 기수와 트레이너, 말에 대해 요리 조리 연구를 하며 누가이길까 궁리를 하는 과정은 즐거운 몰입이었다. 20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의 가슴 졸이는 스릴, 내가 찍은 말이 1등으로 들어오는 순간의 그 짜릿함을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까.

꼭대기 층의 Vessels Club에는 스포츠 코트를 멋지게 차려 입은 중년 신사와 그의 연인이 테이블 위의 개인 모니터를 통해 레이스를 지켜보며 멋진 저녁 식사를 함께 즐기고 있다. 거액의 돈을 걸어 조마조마해 하지도 않고 그저 여유 있게 사전 분석과 레이스, 그리고 그 결과를 즐기는 모습에는 넘치는 기품이 있었다.

LA 인근의 경마장 안내

▲Santa Anita Park
1934년에 지어진 샌타아니타 파크는 아르데코 양식의 우아함과 최첨단 장비를 함께 갖춘 경마장. Turf Club의 레스토랑은 드레스 코드를 갖춰야 할만큼 전통이 강조되지만 그 밖의 트랙은 캐주얼한 분위기다. 매주 일요일은 Family Fun Day로 당나귀 타기, 페이스페인팅 등 어린이들을 위한 여흥거리가 마련된다.

새로 지은 FrontRunner 레스토랑은 샌개브리엘 마운틴의 장엄한 경관이 눈앞에 펼쳐지며 모든 테이블에 TV 모니터가 달려 식사를 즐기며 중계를 지켜보고 베팅도 할 수 있다. 오전 7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Clocker’s Corner에서 진행되는 아침 운동에 가면 베팅하고자 하는 말이 트레이닝 받는 장면과 함께 말의 상태를 지켜볼 수 있다. 시즌은 12월-4월. 10월과 11월의 6주간에도 레이스가 있다. 레이스트랙은 연중 내내 다른 로케이션에서의 경마 중계와 베팅에 오픈 된다. 285 W. Huntington Dr. Arcadia, CA 91007, 전화 (626) 574-7223

▲Hollywood Park Racetrack
1938년 빙 크로스비와 월트 디즈니가 합작 투자해 세운 곳으로 아르데코 스타일의 건물이 아름답다. 1991년 호수와 정원 등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마쳐 초창기의 명성을 되찾았다. 금요일 저녁에는 맥주가 포함된 입장료가 1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Hollywood Bar와 Players Club에서는 테이블 위의 개인 모니터를 지켜보면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기프트 샵과 다양한 구내 레스토랑을 갖추고 있는데 Paddock Grill의 햄버거 맛은 소문이 자자하다. 1050 South Prairie Ave. Inglewood, CA 90301, 전화 (310) 419-1500

▲Del Mar Thoroughbred Club
주주인 빙 크로스비가 1937년 오픈 레이스 때 직접 팬들에게 인사를 했던 이곳은 에바 가드너 등 1940년대 은막을 장식했던 배우들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역사적인 장소. 1991년 보수 공사로 Grandstand 좌석은 한층 좋아졌고 피크닉 공간, 레스토랑, 기프트 샵 등 부대 시설아 더해졌다. 코앞의 바다로 직접 이어지는 다리도 건설했다.

그랜드스탠드의 Stadium석, 클럽하우스 등 다양한 눈높이에서 경기를 관전할 수 있다. 입장료 4달러. 6층 클럽하우스의 Il Palio 레스토랑에서는 개인 모니터와 함께 식사를 하며 게임을 즐길 수 있다. 7월부터 9월 사이에는 Pacific Classic 등의 레이스가 벌어진다. 2260 Jimmy Durante Blvd. Del Mar, CA 92014, 전화 (858) 755-1141

▲Los Alamitos Race Course
1941년부터 레이스가 시작될 만큼 유서 깊은 곳으로 야간 1/4마일 레이스와 그 외 다양한 경기가 펼쳐진다. Grandstand Area에는 스낵바와 알콜 음료를 판매하며 경주마를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Clubhouse Level에서는 좀 더 좋은 경관에서 경기를 관전할 수 있고 Vessels Club에서는 디너와 함께 파노라마 같은 경관을 즐길 수 있다. Vessels Club의 드레스 코드는 철저하게 지켜져 남자는 스포츠 코트를 입어야 하고 운동화를 신고는 입장할 수 없다. 4961 Katella Ave. Los Alamitos, CA 90720, 전화 (714) 995-2222

⊙경마 용어는 웹사이트, http://www.triplecrowns.com/betting_guide/glossary에 들어가면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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