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산위의 동네

2003-07-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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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주간 페루에 다녀왔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가리의 글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가 있습니다.
많은 새들이 죽음의 장소로 페루를 택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도 젊은 시절에 혁명의 전사로 지냈지만 인생의 마지막을 조용히 정리할 장소로 페루를 택하고 은둔하여 카페를 경영하며 지내며 겪는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문학인들의 마음에 페루는 삶의 에너지가 쏟아나는 힘찬 희망이 있는 장소라기보다는 한 때 화려했지만 무너지고 숨겨졌던 잉카제국의 모습처럼 회한과 은둔의 장소로 비친 것 같습니다.
제가 페루에 간 것은 도시 빈민사역을 하시는 양주림 선교사님의 사역을 접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어느 도시에나 빈민이 있습니다. 가난은 번영의 화려함이 드리우는 음지에 항상 있는 것이지만, 페루의 도시 빈민은 좀 달랐습니다. 수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페루에는 전 인구의 47%가 극빈자라고 하는데, 제가 갔던 그 지역에만 80만 명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 갔을 때 가난에 찌들어 희망을 잃고 방황을 넘어 방탕에 이른 수많은 청년을 보며 가슴이 아팠었습니다. 그러나 페루의 가난한 청소년들은 달랐습니다. 반항적이라기보다는 순종적으로 보였습니다. 난폭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유순한 것이 문제로 보였습니다. 좌절된 꿈 때문에 허탈에 빠진 것이 아니라, 꿈을 제대로 한 번 꾸어 보지도 못하고 지내는 영적 안일함이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우리의 청소년들보다 순수해 보였습니다. 저들에게 복음의 빛만 비추어 진다면, 그리고 저들의 형편을 영적으로 잘 인도해 줄 사람만 있다면, 페루의 빈민가는 아름다운 도시로 회복될 수 있다는 강한 느낌을 갖고 그 지역을 떠날 때 땅거미가 지고 어두움이 올려왔습니다.
그 때 저는 제 평생에 경험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에 하나를 경험했습니다.
밤이 되어 잿빛 모래 산에 촘촘히 들어선 판자집들(집 한 채 값이 500불) 사이에 세워진 전봇대에 불이 하나씩 켜집니다. 한 순간 산 위의 아름다운 불빛의 바다를 이루는 장관으로 변했습니다.
사실 밤은 빈민들에게는 그다지 반가운 시간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일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장면인 것은 그 불빛 속에서 우리 주님의 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희망을 줄 주님의 계획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의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마 5:14). 저와 저희 교회와 LA의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세상의 빛’이 된다면, 페루의 산동네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잿빛 모래 위에 세워진 엉성한 판자 집들이, 영적으로는 반석이 위에 든든히 서게 된 복음의 가정들이 될 날을 벅찬 마음으로 상상해 봅니다.

한 규 삼
(세계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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