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짧은 글 긴 여운 - 세리와 바리새인

2003-07-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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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장 9절-14절에는 대조적인 두 사람의 기도 모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공적을 아뢰는 바리새인의 기도와,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며 주님의 긍휼을 간구하는 세리의 기도입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교만한 기도를 드린 바리새인은 ‘나쁜 사람’이며 그 반대로 겸손한 기도의 주인공인 세리는 ‘좋은 사람’이라 배워 왔고 또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흑백논리의 시각으로는 본문의 참뜻을 놓치게 됩니다.
이 비유를 직접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이 사람(세리)이 저(바리새인)보다 의롭다’는 판정을 내리셨습니다. 즉 바리새인이 ‘나쁜 사람’인 것이 아니라 세리가 더 의롭다고 비교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리새인 역시 의롭긴 한데 세리가 보다 의롭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이분법으로 바리새인의 삶 자체를 전면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의롭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 의지 자체를 신앙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그의 교만을 탓하셨습니다.
반면 세리를 향한 주님의 칭찬은 불의했던 그의 삶 전반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신앙의 동기로 삼았던 그의 중심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는 이 양자가 더불어 공존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세리처럼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겸손한 마음과, 구원받은 크리스천답게 바리새인같이 의지를 다해 의를 실천하려는 자세 말입니다. 만약 주님의 칭찬을 받은 세리가 불의한 그의 삶을 청산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은총만을 노래하며 그릇된 옛 삶을 거리낌없이 반복했다면, 주님께서는 필경 그를 향해 “너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고 질타하셨을 것입니다.
3년만에 돌아왔지만 한국 교회의 수준이 나아져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본문의 바리새인은 ‘나쁜 사람’이요 세리는 ‘좋은 사람’이라고 보는 유아적 수준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닌지, 모두 자신의 수준을 한 번쯤은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홍성사, ‘쿰회보’(2001년 11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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