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억의 동심담아 ‘날아라 하늘 끝까지’

2003-06-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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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언덕 위에 모여서 할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연을 날리고 있네. 꼬리를 흔들며 하늘을 나는 예쁜 꼬마 연들이 나의 마음속에 조용히 내려앉아 세상 소식 전해준다. 풀먹인 연 실에 내 마음 띄워 보내 저 멀리 외쳐본다. 하늘 높이 날아라. 내 맘마저 날아라 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 한 점이 되어라. 내 맘속에 한 점이 되어라.” 80년대 초 인기를 구가했던 그룹 사운드 라이너스의 노래 ‘연’의 가사다. 짤막한 노래 가사 속에 어떻게 그렇게도 연날리기에 필요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을까 감탄스럽다. ‘추운 줄도 모르고’라는 구절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겨울이라는 계절. 연을 날리려면 바람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일 게다. 지난 주말 미국 연 애호가협회(American Kite Fliers Association) 회원들이 모인 샌타모니카 해변에 가서야 연날리기에 있어 바람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몸으로 직접 확인했다.

무리 오랜 세월 동안 연을 날려온 전문가들이지만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는 바닷가 모래밭에 벤치를 깔고 앉아 갈매기를 바라보는 것밖에 별 할 일이 없다.
김종균(36·자영업), 미경(36·주부)씨 부부는 어린 시절, 노래 가사처럼 할아버지와 함께 만든 연을 날렸던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있다. 얇게 쪼갠 대나무와 창호지로 만든 방패연을 날리던 곳은 겨울날 논두렁길. 벙어리 장갑을 끼고도 자꾸만 곱아드는 손이 얼마나 시렸던지. 유리 가루 잔뜩 먹인 실에 매달아 하늘에 올리면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두둥실 연이 떠올랐다. 얼레를 풀어 신나게 연싸움을 했던 친구들은 지금쯤 어느 하늘 아래서 무얼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지난 주말 이 두 부부는 아들 준태(10)군과 함께 가끔씩 불어오는 미풍에 연을 띄우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준태를 위해서’ 오늘 나들이를 준비했었지만 아들 하는 것을 보고 궁금증이 발동한 아빠, 엄마가 나중에는 준태보다 더 신나게 연을 날리게 된 것.
지금처럼 무선 전화기가 있나 인터넷이 있길 했나. 수백년 전 연은 전쟁시 신호를 보내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다. 인도에서는 연에 갈퀴를 매단 실을 달아 바닷가에 띄워 낚시를 하기도 했었다.
바람에 날리는 연은 시속 50마일의 무서운 속도로 사람들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연에 매달려 잠시 부웅 하늘로 솟아오르는 쾌감을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이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쪽빛 바다 같은 하늘에 유영하는 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항 속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만큼 오만가지 잡생각이 꼬리를 감추고 가만히 자신에게로 침잠해 들어가게 된다. 해변에서 만난 ‘연 사나이’(Kite Guy) 댄 루베쉬는 아무리 하루종일 스트레스가 쌓였더라도 일을 마치고 난 뒤 30분 정도만 연을 날리면 감성이 하얀 캔버스처럼 깨끗해진다고 얘기한다.
14세 때 처음 연을 날려본 글렌 로스타인에게 있어 연날리기는 곧 참선을 의미한다. 주말이면 해가 떠오르는 새벽부터 노을지는 저녁까지 바닷가나 넓은 공원에서 연을 날리며 하루를 보낸다.
때로는 연의 뒤꽁무니를 따라 뛰어다니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비치 벤치에 조용히 앉아 춤추는 연을 바라다본다. 가끔씩은 해지고 난 밤까지 그의 연날리기가 계속된다. 마치 야간비행처럼 밤에 연을 날리면 UFO가 떠있는 듯, 묘한 느낌을 준다.
그는 연을 날리면서부터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세상사 어느 것 하나 뜻대로 되는 것이 있을까마는 연은 바람만 협조를 해준다면 내가 조정하는 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글렌은 스마일이 그려진 깃발 모양의 연을 가리키며 여기에 스마일 마크 대신 태극기를 매달면 좋겠다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연을 직접 디자인한다는 레이가 가져온 연 가운데엔 길이가 15피트는 족히 넘는 길다란 용 모양도 있었고 오색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박쥐 모양도 있었다. 요컨대 새, 곤충 등 날개를 갖고 하늘에 나는 것은 모두 그 모양을 따왔다. 어디 그 뿐인가, 배 모양, 가오리 모양 등 유선형을 가진 동체는 모두 연의 디자인으로 적합하다. 그가 여자친구를 깜짝 놀래주려 만든 연에는 ‘Ray & Marisa’라는 이름이 수놓아져 있다. 하늘에 두둥실 떠오른 연에서 자신과 남자 친구의 이름을 함께 발견한 마리사는 얼마나 감격에 몸을 떨까.
사각형 상자 모양의 작은 연은 바람이 없어도 잘 떠올라 준태는 이 연을 가지고 놀면서 연날리기의 기본을 터득했다. 작은 연에는 줄이 하나밖에 없지만 덩치가 커짐에 따라 줄도 따라 2~4개로 늘어난다. 이제 제법 한 줄 짜리 연을 능숙히 날리게 된 준태, 글렌이 날리는 것을 보고 2줄짜리를 시도해 봤는데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10여분 가지고 놀았더니 처음 비행을 배운 갈매기 조나단처럼 그가 날린 연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바라보는 준태의 입가에 자신이 날아오른 양, 기쁨의 미소가 번진다. ‘그래, 연아. 하늘 높이 날아라. 내 고운 꿈을 싣고서.’ 연을 바라보는 그는 가슴에 이런 바람을 안고 있는 것일까.

◆연날리기 좋은 장소들


▲Captain Kirk’s Recreation Park: 525 North Harbor Blvd. San Pedro (310) 833-3397. ▲Seal Beach Municipal Pier: Ocean Ave.와 Main St.이 만나는 곳. (562) 799-0179. ▲Deane Dana Friendship Community Regional Park: 1850 W 9th St. San Pedro ▲Disney’s PCH Grill Restaurant: 1717 S. Disneyland Dr. Anaheim (714) 956-6755. ▲Dockweiler State Beach Recreation Park: 8255 Vi

◆연날리기 재료와 장비 구입처

연을 직접 만들려면 Kite Shop이나 Sail Material Shop에서 재료들을 구할 수 있다.
▲Kite - Kite, Maggie 주소: 2801 Atlantic Ave, Long Beach. 전화, (562) 424-9176 ▲Kite Connection 주소: 407 Pacific Coast Hwy, Huntington Beach. 전화, (714)536-3630. ▲Harbor Wind & Kite 주소: 1575 Spinnaker Dr # 107B, Ventura. 전화, (805) 654-0900.


◆연날리기 관련 단체

미국 연날리기 협회(The American Kitefliers Association): 1964년 뉴멕시코의 Robert M. Ingraham이 창설한 연날리기 협회(The American Kitefliers Association)는 전세계 35개국에 4,000명의 회원을 둔 대규모 국제적 조직으로 발전했다. 연 만드는 방법과 날리는 기술, 연날리기의 역사를 대중들에게 알림으로써 더욱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연을 날릴 수 있기를 소망하는 비영리 단체다. 미국 연날리기 협회 회원들은 협회는 전지역에서 열리는 가족 중심의 축제 이벤트에 참가해 남녀노소 모두에게 연 만드는 요령으로부터 날리는 방법, 여러 줄짜리 연 시합 방법 등을 함께 나누며 연날리기 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 힘쓰고 있다.
우편 주소: P. O. Box 1614 Walla Walla, WA 99362 웹사이트, www.aka.kite.org. 문의 전화 (661)253-1405 Glen Roth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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