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탐심의 옷을 벗어야 할 교회

2003-06-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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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비유로 ‘한 부자’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부자는 자신의 농장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수확을 얻게 되었다. 원래 부자였는데 갑자기 더 부자가 된 이 사람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사람은 예상하지 않았던 많은 돈이 벌리게 되면 제 정신을 잃게 되는가보다.

부자가 염려한 것은 그 많은 곡식을 어디에 쌓아둘까였다. 예수께서 부자에 대한 비유를 말씀해주신 출발은 ‘탐심을 물리치라’는 경고 후에 주신 말씀이었다. ‘탐심’이라는 말은 ‘불법 소득’ 혹은 ‘정직하지 못한 소득’에서 온 말이다. 만일 예수께서 탐심이라는 말뜻을 잘 알고 계셨더라면 부자에 대한 비유보다는 강도나 도적에 대해서 혹은 당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세무직원에 대해서 예를 들어주시지 않았을까! 어떻게 부자가 불법 소득을 얻었으며, 정직하지 못한 소득을 취했는가? 어떤 면에서 부자는 갑자기 풍년이 들어 많은 소출이 나왔기에 당연히 그 소출을 보관해 놓아야 할 장소가 필요했지 않는가?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이 부자에게 ‘정직하지 못한 소유를 가진 자’ 혹은 ‘불법 소득을 챙긴 자’로 말씀하셨을까? 결코 예수께서 탐심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가 아니다. 부자는 강도보다, 당시 세무서 직원보다 더 탐심이 많았던 것이다. 모든 범죄는 빈곤으로부터 시작된다. 빈곤의 그늘에는 반드시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사용 용도를 잘못 생각하는 자, 부자들의 횡포가 도사리고 있다. 예수께서 단순히 탐심에 가득찬 부자만을 경고하시기 위해서 이런 비유를 들어주시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을 가르치려는 의도가 계셨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소유에 대한 남다른 생각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 시대에 유행하는 경제원칙 위에 교회를 세운 지도자들은 생명과 소유를 분리하시는 예수님의 방법과 거리가 멀다. 오늘의 교회는 불법소득을 하나님의 은혜로 해석하며 자신의 잘못을 헌금으로 적당히 대신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자는 아닌지… 잘못된 신앙의 힘으로 탐심을 정당화시키지 않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셨다. 그런데 교회는 탐심을 물리치도록 외치는 힘을 상실하고 말았다. 교회가 탐심의 중심에 앉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교회는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향해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할 준비를 서둘러야겠다.

손경호 목사
(엘파소 소망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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