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철 주필의 테마여행

2003-06-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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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면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가 마차를 타고 불바다가 된 도시를 탈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불바다가 바로 애틀랜타다. 북군의 셔만 장군은 남군의 중심지인 애틀랜타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영원히 막기 위해 전시가를 초토화시킨다.

아름다운 벌판과 대지주들의 화려한 저택으로 점철된 영화의 ‘타라 농장’은 작가인 마거렛 미첼 여사가 그려낸 무대며 실제로는 존재 하지 않 는다.
남북전쟁으로부터 120여년-애틀랜타는 전혀 몰라볼 정도로 변했다. 남군의 중심지였던 이 도시가 흑인의 중심지로 완전히 얼굴을 바꾼 것이다. 흑인 노예의 후손들이 지금은 미국 남부 최대도시를 장악하고 있으니 남군의 리 장군이 살아있다면 기가 막혀 입을 열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느냐를 가장 실감 있게 보여주는 도시가 바로 애틀랜타다.

시장도 흑인, 경찰국장도 흑인, 시의원 대부분도 흑인이다. 더욱이 시장은 1991년 올림픽 준비위원으로 뛰던 맹렬 여성 셸리 프랭클린으로 미국 대도시에서 흑인 여성 시장이 탄생하기는 애틀랜타가 처음이다. 1972년 미국 역사에서 최초로 흑인 연방하원의원을 선출한 곳도 이 도시다. 앤드류 영이 바로 그 주인공이며 카터 행정부에서는 유엔대사까지 지냈다. 그는 마틴 루터 킹의 보좌관 출신이다. MARTA로 불리는 전철을 타보면 블랙파워를 실감한다. 운전기사에서부터 정거장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흑인 일색이고 어느 건물에 들어가도 경비원은 흑인이다.


애틀랜타의 상징은 마틴 루터 킹이다. 킹 목사는 이 곳에서 태어나 애틀랜타에서 아버지와 함께 침례교회 담임목사를 지냈다. 마틴 루터 킹 기념관 건너편에 있는 붉은 벽돌 교회가 바로 그 침례교회다. 카터 기념관도 애틀랜타에 있다.

애틀랜타는 흑인 교육의 중심지다. 4개 대학으로 이루어진 애틀랜타 유니버시티 센터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흑인 대학이며 흑인사회의 도산 안창호인 두보이스가 설립 에 참여했고, 단과대학 중의 하나인 모어하우스 칼리지는 마틴 루터 킹을 배출했다. 이밖에도 112년의 전통을 가진 흑인 여자대학 스펠만 칼리지도 애틀랜타 유니버시티 센터에 속해 있다.

모든 현상은 반동작용을 가진다. 블랙 파워가 강하기 때문에 백인 보수세력도 강하다. KKK의 대부로 불리는 토마스 왓슨도 애틀랜타 출신이고 백인 컨트리클럽으로 이름난 매스터스 토너먼트의 ‘어거스타 내셔널’도 애틀랜타 부근이다.

애틀랜타는 흑인 파워가 장악했지만 조지아주는 여전히 백인 파워다.코카콜라, 델타 에어라인, CNN 방송, 피치추리센터 등 애틀랜타 상징 비즈니스는 백인 파워다.

따라서 애틀랜타는 정치 파워와 경제 파워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오래된 바나나 색깔과 비슷하다. 겉은 검지만 껍질을 벗기면 하얗다. 마틴 루터 킹이 흑인들의 선거인 등록 캠페인을 벌인 것은 열매를 거두었으나 경제구조에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블랙 파워의 한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 애틀랜타이기도 하지만 남군의 중심지가 흑인 중심도시로 바뀌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철 주필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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