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재철 목사의 짧은 글 긴 여운 참으로 신실하게

2003-06-1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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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즈음 주일이면 즐겁다. 아이들이 태어난 이래 가족과 나의 예배 위치는 언제나 달랐다. 나의 위치가 강단이었던 반면 가족들의 그것은 늘 회중석이었다. 그나마 교회학교에 속하여 있던 아이들과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예배의 공간마저 같지 않았다. 그러나 요즈음은 온 가족이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예배를 드린다. 그래서 주일이면 즐거운 것이다.
스위스에서 귀국한 이후 나는 조그만 개척 교회를 다니고 있다. 내가 스위스에 있는 3년 동안 우리 가족의 신앙을 책임져 주었던 고마운 교회이다.
얼마나 작은 교회인지 출석교인이라야 우리 6식구를 포함하여 30여명 남짓이다. 교회학교도 없다. 아이들은 어른과 함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즐겁다. 그 덕분에 온 가족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주일마다 즐거워하는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빌딩 연수실을 빌려 예배드리는 그 교회엔 변변한 성가대나 피아노 혹은 오르간도 없다. 엠프 시설 역시 수준 미달이다. 그 어떤 경건한 장식과도 거리가 멀다. 그 교회 담임목회자(조성기)의 신학사상과 나의 생각이 완전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매주일 선포되는 그분의 신실한 설교는 나머지 모든 부족을 메우고도 남는다. 신실한 설교란 두말할 것도 없이 설교자의 삶과 괴리를 이루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그분의 삶에서 설교를 듣고 그분의 설교에서 그분의 삶을 본다. 그래서 나는 매주일 즐겁다. 신실한 크리스천을 만나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으므로!
또 해가 바뀌었다. 그러나 참으로 신실해지지 않는다면 새해와 묵은 해의 구별은 무의미할 것이다. 참된 크리스천 됨은 외형적인 업적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신실해짐에 있다.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이고, 우리 주님께서 신실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홍성사, ‘쿰회보’(2002년 1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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