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 줄서기

2003-06-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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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청소년 전국대회가 열리는 콜로라도 덴버에 초청 받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약 2,000명 정도의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오랜만에 십대가 된 기분으로 눈싸움하는 기쁨을 가져 보았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아이들이 여가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시간표를 짜는 일이었습니다.
휴식시간에 볼링을 칠 사람을 모집하기 위해 토요일 1시30분과 3시30분에 사인업 하는 종이를 만들고 1시30분에 50명, 3시30분에 50명 정도 신청할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줄을 서있던 학생들이 1시30분에 3명, 3시30분에 3명이 나란히 사인을 해서 비슷하게 신청하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 때 4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3시30분에 신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온 아이들은 1시30분에 신청하라고 해도 계속 3시30분에 사인하고 3시30분 신청서가 다 차고 나서야 1시30분에 사인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1시30분에 사인을 하면서도 3시30분에 치고 싶다고 볼멘 소리를 하면서 더 신청을 받으라고 졸라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군중심리의 무서움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보듯이 정치인도 소신 없이 정치인이 많이 서는 쪽을, 젊은이들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줄서기 쏠림 현상이 눈에 띄게 보이는 선거였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줄서기 현상은 특히 덜 성숙한 교인일수록 더한 것 같습니다. 말씀이 누가 좋다하면 십년 다니던 교회도 헌신처럼 던져버리고 몰리고, 교회를 건축할 때가 되면 너도나도 소리도 없이 사라지고, 목사를 비판할 때가 되면 줄서서 소리치는 아우성 소리를 듣습니다.
교회를 오면 줄서는 곳이 몇 곳 있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고 기도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성도들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구석에서는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몸이 불편한 초췌한 권사님의 창백한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권사님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 줄을 서는 따뜻한 교인들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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