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재철 목사의 짧은 글 긴 여운 양화진 묘지

2003-05-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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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전 합정동으로 이사 왔을 때, 사람들은 제 집 앞에 있는 선교사 묘지를 ‘양화진 묘지’라 불렀습니다.
막 준공된 예배당 건물을 제외하면, 인공적인 손길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양화진 묘지엔 많은 선교사님들의 무덤이 자연 그 자체를 이루고 있었고, 세월의 연륜에 희미하게 이지러진 각 비석의 짧디짧은 비문은, 그러나 천만 마디의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었습니다. 묘지 입구의 마당에서는 언제나 동네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뛰어놀았고,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는 벤치는 동네 어른들의 좋은 휴식처였습니다. 제 아이들 역시 그 마당에서 뛰놀며 자랐습니다. 이렇듯 삶과 죽음이 한데 어우러진 양화진은 더없이 좋은 신앙 교육장이요, 인생 사색장이었습니다.
날과 달 그리고 해가 흘러가면서, 무명의 양화진이 개신교의 성지로 알려지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부쩍 늘어나자 양화진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외국인 묘지’란 공식명칭의 팻말이 세워졌습니다.
선교사 묘지와 외국인 묘지는 단어의 차이만큼이나 느낌의 차이도 컸습니다. 모든 것이 통제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더 이상 마당에서 뛰놀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새롭게 들어선 것들이 있습니다.
선교사님의 비석에 대통령 휘호가 등장하는가 하면 대형 교회 목사님의 기념 식수비도 세워졌습니다. 특정 교파 혹은 교회는 자신들과 관련 있는 선교사님들의 무덤에 자기 단체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세우거나 문장(紋章)을 붙였습니다. 돌아가신 선교사님들의 뜻이나 정신과는 전혀 상관 없이, 선교사 묘지가 흡사 산 사람들의 자기 이름 내기 경연장이 된 것 같습니다.
터키에는 터키 기독교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다는, 한국 목사님들의 자작 기념비도 있습니다. 하기야 생전에 자기 이름을 붙인 기념 교회까지 등장하는 판이니 새삼 놀랄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기념비를 세웠던 사울 왕이나 압살롬의 말로가 어떠했었는지를 상기하면서, 우리 각자는 지금 대체 누구 이름을 내세우며 살고 있는지, 주님인지 나 자신인지, 정직하게 생각해 볼 때입니다.

-2003년 5월 홍성사 ‘쿰회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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