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장실에서 (2)

2003-04-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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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말, 그 동안 미루어 오던 왼쪽 무릎의 ‘반월형 연골판’ 제거수술을 받았습니다.
작년 8월4일, 점심식사를 마치고 식탁에서 일어서는 순간, 갑자기 왼쪽 무릎에 대못을 박는 것 같은 통증이 엄습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열이 나면서 붓기 시작하였습니다. 약으로 다스려보려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제네바 병원에 예약을 넣었더니 9월 초에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9월21일에 한국으로 귀국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8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통증과 부기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병원 예약을 취소하였습니다. 수술이나 치료가 필요하더라도 한국에 돌아와서 받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귀국 후 정밀검사를 받아본 결과, 반월형 연골판이 찢어져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증상이었습니다.
찢어진 연골을 제거하는 수술 그 자체는 대수롭지 않았으나,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전신마취는 마냥 가볍기만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크나큰 은총이었습니다. 병실에 누워 하나님 앞에서 제 인생을 되돌아보며, 하나님 앞에서 제 나이의 육체가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술이 끝난 뒤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전신마취에서는 완전히 깨어났지만, 하룻밤이 지나고 그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아무리 애를 써도-개스와 소변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멈추었던 내장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에, 전신마취를 받은 수술환자에겐 필수적인 과정인데도 말입니다. 옆 병상의 환자가 병실 내의 화장실에서 소변보는 소리가 그 날처럼 부러웠던 때는 이전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을 때의 감격과 감사가 얼마나 컸던지요.
감사의 조건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었다면, 그보다 더 큰 감사의 조건은 없습니다. 감사의 조건은 언제나 내 가까이,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홍성사, ‘쿰회보’(2002년 4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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