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꾼으로 쓰임받아 가슴설레”

2003-04-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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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하기 가장 좋은 시기가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간 이후인 50대죠. 단기 선교로 도전을 받고 장기로 헌신하는 선교사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샘의료복지재단이 설립한 중국 단동기독병원으로 파송되는 박의식 선교사(66)는 한인사회에서 치과의사로 활동해온 올드 타이머.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1968년 4월 아내 박범오씨와 함께 도미해 이듬해부터 한인타운에서 박의식 치과를 개업했다. 20년이 넘게 잘 나가는 치과의로 명성을 쌓아온 박선교사는 50세 생일을 맞으며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고 한다.

“생일 잔칫날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이제부터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공포했습니다. 이민 와서 3남매와 아내 뒷바라지밖에는 남을 위해 한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편하지 않았었죠”


중3짜리 막내딸을 쳐다보기가 가장 가슴 아팠다는 박 선교사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에게서 ‘선교사가 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어머니는 13세 때 미국인 선교사에게서 복음을 전해 받은 한국 기독교 초창기 독실한 교인으로 아들이 미국으로 떠나오기 전날도 의사로의 성공보다는 선교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아내와 함께 LA 한인침례교회로부터 파송 받은 선교사로 중국에 있는 연길노불구강병원(캐나다와 중국 합작 치과)에 도착한 것이 1990년 6월, 개방 1년이 지난 당시 중국은 박 선교사에게 그야말로 복음의 황금어장이었다.
1997년 안식년을 취하기까지 7년이란 세월을 문맹과 가난에 시달리는 중국 한족을 돌봤던 박 선교사는 안식년을 끝낸 1998년 모두들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싶어하는 시기 60세의 나이에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의료 선교사역을 떠났다.

“은퇴하고 자식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는가 싶으면 부름을 받습니다. 박세록 장로를 만나 단동기독병원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일군으로 쓰임 받는다는 설렘이 앞섰습니다”

중국내 사스의 확산으로 일정이 다소 연기돼 중국 단동병원으로 떠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 박 선교사는 “현재 단동병원에는 의료진 18명과 현지 직원 48명이 근무하고 있고 장백과 집안에도 치료소가 개원돼 극빈 조선족 환자들과 북한 주민들을 무료 진료하고 있다”면서 “선교의 바람은 있어도 함께 떠나지 못해 안타까움을 느끼는 의사들이 있다면 약품과 재료를 지원해 주면 더없이 좋겠다”고 덧붙였다.

(213)381-1347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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