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이민자는‘힘없는 주변’이 아닙니다

2003-04-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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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성도님이 수 년 동안 마음에 담아 온 부끄러운(?) 경험 하나를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134번 도로를 따라 가장 갓 길에 운전하던 중, 앞에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도로 밖으로 떨어졌습니다. 순간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만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런데 뒤따르던 몇 대의 차가 곧바로 옆으로 쏜살같이 빠져나가 어려움 당한 차를 돕더란 것입니다. 심지어 가운데 차선을 따라 달리던 차가 곡예를 하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옆으로 빠져나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이민자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한국의 모 대학에서 교수하는 친구가 이곳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나는 미국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민자는 이민자의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쉽게 방관자가 되어 버립니다. 물론, 언어와 문화의 불편이 우리를 적극적인 사회 활동으로부터 위축시키는 이유가 됩니다.


영어 표현에 “social enclave”가 있는데, 소수계 이민자들의 단절된 생활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하는 용어입니다. 자기네들끼리 똘똘 뭉쳐 살 뿐 주류사회의 일에는 무관심한 집단을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를 나그네라고 부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임시적 삶”이란 뜻입니다. 이민자는 자연스럽게 이런 가르침을 익히고 있습니다. 여러 상황들이 정기적으로 우리가 이 사회의 “중심인”이 아님을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한편은 서글픈 현실이지만, 역으로는 성경적인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좋은 조건입니다.

그러나 경계할 것이 있습니다. 삶의 지경이 좁아지고 생을 보는 시각이 편협해지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어떤 사회 심리학자의 글에서 이민자는 감정의 변화 폭이 크다는 지적을 읽었습니다. 이민자들은 별 것 아닌 일에 실망하고 역시 별 것 아닌 일에 흥분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민자의 땅에서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첫째가 이 사회의 질서를 철저히 지키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이 사회의 중심이란 의식이 적더라도 누구보다 이 사회의 질서를 철저히 지킴으로 ‘힘없는 주변인’이 아니라 이 땅에 발을 굳게 디딘 ‘초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또 다른 이민자들을 향한 관심을 늘리는 것입니다. 특히, 미국 땅 밖에 있는 한민족 이민자에 대한 부담을 갖는 것입니다.

중국에는 조선족이 있고, 구 소련에는 고려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우리 보다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갑니다. 저는 종종 지구의 다른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한민족 이민자들에게 관심을 돌려보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한 규 삼 (세계로 교회 담임, 전 나성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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