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철 주필의 테마여행 얻은것과 잃은것

2003-06-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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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슨 대통령은 미국의 1차 세계대전 참전을 국민에게 알리는 연설에서 “이 전쟁은 지구상에서 전쟁을 없애기 위한 마지막 전쟁이 될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왜 명언인가 하면 그 후 세계 정세는 정반대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은 오히려 미국이 세계 전쟁에 본격적으로 말려든 시작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중요한 전쟁에서 희생된 미국 전사자수는 1차 세계대전 5만3,000명, 2차 세계대전 40만5,400명, 한국전쟁 3만3,629명, 월남전 5만8,000명이다. 한번 전쟁을 치를 때마다 몇 만명씩 희생자가 나오니 미국민들이 오래 끄는 전쟁을 결사 반대하는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이번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기 며칠 전 기자에게 미국인이 e메일을 보내 왔는데 타이틀이 ‘프랑스에 대지진 나다’로 되어 있었다. 프랑스에 지진이 났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없는데 이상하다 싶어 읽어 봤더니 프랑스의 배신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구하려고 싸우다 죽은 미군이 5만6,000명인데 이들이 모두 프랑스에 묻혀 있다고 한다.


이번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프랑스가 미국 참전을 반대하자 지하에 묻혀 있던 미군들이 격노하여 일제히 일어나 “그럴 수가 있는가”고 규탄하는 바람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미국다운 조크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는 5,000척의 군함에 15만4,000명의 미군이 승선했었는데 상륙과정에서만 1,000여명이 죽는 혈전을 치렀었다. 미국이 요즘 프랑스에 배반감을 느끼는 데에는 이와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전쟁을 치를 때마다 미국의 무기체제는 세계 첨단을 달렸다. 1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의 U보트가 설치자 대잠함 및 구축함을 대량 생산했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원자폭탄 및 항공모함과 탱크, 한국전에서는 폭격기와 제트전투기, 월남전에서는 각종 정글전 장비와 헬리콥터, 걸프전에서는 스텔스 전폭기와 스마트폭탄 그리고 이번 이라크와의 전쟁에서는 적의 전자장치를 마비시키는 E폭탄 등이 개발되었다.

미국의 저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진주만 기습에서 주전함 18척을 잃고도 75개의 항공모함을 건조해 냈으며 전쟁 막바지에는 한달에 전투기 700대를 생산할 정도였다. 지난 90년 동안 미국은 갖가지 전쟁을 모두 치른 백전노장인 셈이다.

전쟁에는 당연히 변화가 따른다. 1차 대전 후 미국은 세계 정상국가로 발돋움했고, 2차 대전에서는 전쟁터에 나간 남성들을 메우기 위해 여성 취업 붐이 일어났으며, 월남전에서는 파병 찬성과 반대로 국민 의견이 갈라져 ‘리버럴’로 불리는 진보세력이 생겨났고, 걸프전은 흑인과 마이너리티 장병이 미군의 주축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으며 처음 여군 전투병이 탄생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우방을 보호하는 국제 경찰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고 특히 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웅 이미지를 쌓았다. 가장 비참했던 것은 월남전 패배였으며 전쟁에서 대의명분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그런데 미군은 지금 월남전에서 얻은 교훈을 망각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은 월남전보다 미국의 이미지를 더 추락시킬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지금 함정에 빠져 있다.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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