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나눌 수 없는 아픔

2003-03-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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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내가 가진 불행이 제일 크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과 색깔이 조금 다를 뿐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예쁜 눈에 촉촉이 물기가 서렸다. 내가 생각건대 저런 경지까지 가는 데는 숱한 넘어짐과 좌절과 고통이 있었으리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인들 없었겠는가!

“아직도 해결 못한 부분은 17살에 사고가 나서 14년이 지났는데 그 열일곱이라는 나이 이후가 견딜 수 없었습니다. 57살 이후의 14년이면 용납이 되어질 것 같은데...”


그녀의 가장 빛나는 청춘이 휠체어에서 날아가 버리고, 남은 인생 역시 휠체어라니...사지 육신이 멀쩡한 내가 어떻게 그 아픔의 만 분의 일인들 알 수 있겠는가! 하기 쉬운 말로 육신이 건강해도 정신적 장애를 앓는 사람이 더 많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을 거라고 위로할 수가 있겠는가!

그녀는 사고 당한 후 병원에 입원해 있던 넉 달, 그리고 퇴원하고 집에서 가료하던 두 달을 빼고는 자신의 손수건 한 장도 남의 손을 빌려서 빨아본 적 없노라고 말했다. 그녀는 강한 의지와 투지로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애쓴 흔적이 몸 전체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사고를 낸 사람을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고의가 아니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이 내게 보여준 무관심 때문에 지금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나는 물질도 원하지 않았고 어떤 보상도 원해 본적이 없습니다. 다만, 절절히 외로워 견딜 수 없을 때 따뜻한 마음을 원했을 뿐이데... 그들이 내게 들려준 것은 “너의 팔자야!” 라는 대꾸였습니다.

나는 지금 분노로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공기를 마시는 게 아니라 분노를 마시는 것 같아 호흡이 곤란할 지경입니다”
“살아 보겠다는 의지 같은 건 처음부터 가질 필요가 없었어요. 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거든요. 그러나 외로움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사고는 육신을 불구로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24시간 통증이 심해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진통제를 너무 많이 먹어 위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장기가 약의 부작용으로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미워하는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이 막혀옵니다. 분노와 증오가 나 자신을 죽이는 줄도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답을 알고 있었다.

내가 내놓은 임시처방은 “마음껏 미워하십시오.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원망도 하시고, 소리도 지르시고, 비명도 지르십시오” 그녀는 너무나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예수를 만나십시오. 그분만이 완전한 치료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생각되어졌기 때문에 임시 진통제용으로 마음껏 미워하라고 했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나와 그녀의 데이트가 얼마나 계속될 지 모르겠지만 같이 나눌 수 없는 그 아픔의 무게를 예수님의 어깨로 옮기게 하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쓰임 받고 싶을 뿐이다.

최 미 화 (아름다운 동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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