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무면허 상담실 창구에서 ⑴

2003-02-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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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에서 우리들이 갖고 있는 문제는 희·노·애·락의 감정문제이거나 생업, 부부, 자녀, 신분문제 등 누군가가 대신 해줄 수 없는 문제들이다. 매맞는 아내의 입장에서 그 아픔과 분노 그리고 모멸감을 내놓을 때는 내 속에서 꺼쟁이(지렁이) 오줌 같은 신물이 올라온다.

신분 문제의 어려움을 꺼내놓고 한숨 쉴 때는 내 명치끝에 태엽 감는 소리가 도르륵 도르륵 하고 들린다. 자녀 문제? 그것은 더 더욱 정답이 없는 게 아닌가! 그럴 때 나는 오랫동안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나타나는 다리 저림 같은 것이 온몸에 정전기 되어 번져간다.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 준다고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가만히 들어주는 것, 그 속내를 꺼내 놓은 분의 입장에 서주는 것, 헤어질 때 손잡고 기도해 주는 것, 그리고 예수님이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숙제로 주는 것이 전부이다.


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일보는 곳에 같이 가 주기도 하고 대신 줄을 서 주기도 한다. 주로 그런 일에 도우미가 되던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 찾아 왔다. 그녀는 질문 사항들을 작은 쪽지에 메모해 와서 청문회 하듯 내게 첫 마디를 건넸다.

“사모님! 영적인 사람이 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나는 그녀의 얼굴 표정을 살폈다. 그녀가 묻고 있는 의도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몰라서 묻는가? 나를 재어보고 달아보기 위함인가? 아님?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마치 미리 준비해 두었던 현금을 꺼내놓듯이 “그것은 내가 죽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내가 죽지 않고는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녀의 얼굴에 너무나 의외라는 표정과 놀라움이 교차했다. 그녀는 그것을 급히 감추고 태연히 말했다. “정말 그렇겠군요. 그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한다는 게 무엇입니까?”

그녀가 지금까지 자신이 들었던 일반적이고 공식 같은 대답을 바라는 게 아니란 걸 나는 처음부터 감지했다. 왜냐하면 오랜 신앙생활로 하나님도, 성경도, 교회도, 알만큼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나를 달아보고 있음도 분명해졌다.

“질문이 몇 개입니까? 한꺼번에 다 들어보고 그리고 하나씩 정리하기로 해요.”

“예, 사모님. 한가지 더 있는데… 영생은 무엇입니까?”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할 수도 있었다. “그 나라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 자신이며 그 의는 십자가 구속의 은혜”라고 또 요한복음 몇장 몇절에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내 머리 속 자판을 두드리기만 하면 청산유수로 쏟아낼 수 있는데 나는 그것을 유보시켰다. 말씀에 대한 갈증과 목마름이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로 하여금 마른침을 삼키게 하고 있었다.


“내가 집사님께 이 자리에서 당장 답을 드린다면 절대로 온전히 소화 흡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자주 만나 교제하면서 같이 답을 찾아 나갑시다. 얼마가 걸리든 내가 갖고 있는 것과 집사님의 답이 일치하는지, 안 하는지 함께 가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녀와 나는 매주 토요일 새벽 기도회가 끝난 후 아침 7시에 만나 좋은 시간을 갖기로 하고 헤어졌다. 계속된 만남이 6주가 지난 후 그녀는 우리 교회의 성도가 되었다.

지금은 말하지 않아도 말하는 사이가 되어 눈으로 이야기한다.“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알아 가는 것”이라고.

최 미 화
아름다운동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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