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집회를 접으며

2003-02-0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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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철 목사의 짧은 글 긴 여운

작년 9월 하순 제네바에서 귀국하면서, 매달 국내외 1회씩만 집회에 응하고 나머지 시간엔 책을 쓸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사의 입장에서 여러 곳의 요청을 마구 거절만은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계획을 변경해야만 했습니다. 즉, 2004년 말까지만 일정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집회 요청에 응하기로 한 것입니다(그 이후에도 계속한다면 결국 직업 부흥사가 되는 셈인데, 그것은 제 길이 아님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름이 끝난 9월부터 100여 일 동안만도 국내외에서 33회나 크고 작은 집회가 있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집에서 잠을 잔 날은 겨우 20여 일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9월말부터 10월말까지 한 달간은 불과 4주 동안 무려 여섯 차례나 출국해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상식을 뛰어넘는 강행군을 하고서도, ‘우리 교회는 작다고 오지 않는 거냐?’ ‘우리 지방을 이렇게 푸대접하긴가?’ ‘○○○ 목사도 전화 한 통이면 달려오는데 왜 그렇게 비싸게 구느냐’ 이런 전화를 받을 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동안 주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를 거저 나누는 소명을 다하기 위해 어디서도 집회의 대가로 단 한 번의 사례비를 받아 본 적도 없건만,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떼돈을 번다’는 헛소문이 들릴 때는 서글픔마저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로 행보를 멈추기엔 짜여진 일정이 숨이 막힐 정도로 빡빡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데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무리한 일정에 제 건강이 여의치 않게 된 것입니다. 더욱이 금년 초에 수술 받은 왼쪽 무릎은, 충분한 회복의 여유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거의 매일 장시간 강단에 서다 보니 여러 모양으로 편치가 않았습니다.

결국 상당 기간 안식을 요하고 특히 장거리 비행은 금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권유에 따라, 부득불 금년 말로 집회 사역을 접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와 관련된 분들의 깊은 이해를 구함과 아울러, 내년에는 저 자신의 정진을 위해 더욱 힘쓸 것을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홍성사, ‘쿰회보’(2002년 12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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