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신도·목회자 돕기 마지막 사역”

2003-01-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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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갈보리교회 은퇴
‘말씀의 집’여는 박조준 목사

“안녕하십니까? 저는 그동안 한국 갈보리교회의 목회사역을 이필재 목사님에게 맡기고 미국에 왔습니다...이제 저는 새로운 일로 ‘세계지도력 개발원’에서 목회자와 평신도의 지도력을 개발하며 ‘말씀의 집’에서 교파와 제도를 초월하여...하나님의 은총을 받기 원하는 분들과 함께 여생을 바치려 합니다”(세계지도력개발원 총재 / 말씀의 집 담임목사 박조준 올림)

지난 주 본보를 비롯한 몇몇 언론에 실린 광고의 일부분이다. 박조준 목사(68) 하면 지금 40대 이상의 중장년층 크리스천들은 그 이름을 다 알 정도로 한국 기독교계에 큰 영향을 미친 목회자다. 38세의 젊은 나이에 ‘거성’ 한경직 목사의 뒤를 이어 영락교회의 담임으로 부임한 이력도 그렇지만, 84년 외화밀반출 혐의로 떠들썩한 물의를 빚은 후 사임한 사건, 이어 특정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교회 ‘갈보리교회’를 세워 크게 부흥시키고 성공적으로 목회해온 그의 목회여정은, 순탄치는 않았으나 한국교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왔다.

그 박조준 목사가 교인수 1만여명에 이르는 갈보리교회를 은퇴하고 올해초 남가주로 목회지를 옮겨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떠난 갈보리교회에는 이곳 토랜스제일장로교회에서 작년말 은퇴한 이필재 목사가 새담임으로 부임했다. 항간에는 “두 원로목사가 자리만 바꾸었다”며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은퇴후 교회에 남아 영향력을 행사하려하기 보다 과감하게 떠났다는 점, 원로목사라도 아직 건강하게 목회할 수 있는 동안 외지에서 보람된 사역을 하려 한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화제의 인물 박조준 목사를 인터뷰했다.


·한국에도 좋은 목회자들이 많을텐데 이필재 목사를 후임으로 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필재 목사와는 3년전 목양프로그램에서 만나 가까워졌는데, 나와 목회철학이 꼭 맞아 후임으로 마음에 두었습니다. 형식적인 것을 싫어하고, 명예욕 없이 조용히 목회에만 전념해온 분 아닙니까? 1월 첫째주 가진 이취임예배도 우리끼리 간단히 마쳤습니다. 각계각층의 거창한 축사들 다 빼고요. 의미가 중요하지 형식에 매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나는 바로 그 다음날 떠나왔습니다.

·이필재 목사도 은퇴한 분이니 남은 목회기간이 얼마 되지 않겠습니다

▲이제 60이니 그래도 한 10년은 할겁니다. 그만한 목사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두사람이 한국과 미국에서 자리만 바꿨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내가 토랜스제일장로교회로 가야 자리를 바꾼거지요. 나는 나름대로 다른 사역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왜 미국을 다음 목회지로 정했습니까


▲사실은 6년전부터 갈보리교회 은퇴를 준비했습니다. 나 자신도 경험했지만 은퇴 후에 원로목사로 남아 후임을 어렵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는 그런 짓 하지 말자고 결심했고, 은퇴후 한국서 일하거나 가까이 있는 것이 도움 안 돼 미국행을 택했습니다.

·세계지도력개발원이 어떤 기관인지 설명해주시죠

▲목사들과 평신도들의 지도력을 개발하고 훈련하기 위해 3년전 세운 기관입니다. 미국서만 그동안 애틀란타, 시애틀, LA, 뉴저지, 샌디에고에서 5회 세미나를 가졌고 한국과 일본에서도 사역해왔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훈련하는 것입니까

▲이민목회자들 중에는 너무 심하게 탈진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위해 사명감 있는 목회자들이 자기 여비로 찾아와서 강사료 받지 않고, 헌신적으로 목회의 노하우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필재 목사가 부총재로 돕고 있지요. 정치나 명예에 관계없이 후배들에게 용기를 주고 돕기 위한 프로그램이므로 보람도 크고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앞으로는 평신도와 재직들을 대상으로, 예수 바르게 믿기, 성경적인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에 관해서도 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할 계획입니다.

·말씀의집은 어떤 곳입니까

▲주일에 순수하게 예배만 하는 곳입니다. 2월 첫째 주에 창립예배를 갖습니다.

·그럼 교회입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다만,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요시하는 교회, 제도와 직분 없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만 중점을 두는 교회입니다.

·벌써 건물을 구입했다고 들었는데요

▲애너하임에 700~8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미국교회를 구입했습니다. 지금 수리중이고 부족한 시설이 많아 계속 확충할 계획입니다.

·구입비용이 적지 않았을텐데 무슨 돈으로 샀습니까

▲갈보리교회에서 다운페이를 해줘 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의 생활비도 매달 보내주고 있으니,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사역에 전념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요. 또한 뜻을 같이하는 후원자들이 적지 않아 재정적인 어려움은 없습니다.

·아직도 해명되지 않은 ‘외화밀반출 사건’은 당시 전두환 정권과 영락교회 당회가 공모했다는 ‘모함설’이 파다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 진실된 내용을 밝혀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미 오래전에 지난 일이니 덮어두는게 좋겠습니다. 저는 전두환씨와 특별한 친분을 갖고 있습니다. 또 영락교회의 주요인사들과도 연루된 문제이니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 지난 일입니다.

·이곳에는 간혹 교단을 벗어난 교회가 있습니다만, 18년전 한국에서 독립교회를 개척하기는 일에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처음엔 힘들었지만 고비를 넘기고 나니 괜찮습니다. 당시로서는 선구적이었지만 이젠 완전히 자리가 잡혔고, 명실공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독립교회연합회라는게 생겨 회장을 맡기도 했는데, 지금 350개가 넘고 해마다 30~40 개씩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기성교회에 폐단이 많지 않습니까? 모든 교회와 제도는 봉사하는데 목적이 있지만 역사가 흐르면서 그와 반대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 직분이 계급처럼 여겨져 타락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오래전 가톨릭이 가졌던 문제와 비슷해져가니 깨뜨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교단이나 교파를 벗어나 단독으로 목회하기가 쉽지는 않았을텐데요

▲요즘 한국교회에서 교단의식이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폐단이 워낙 많아 식상해진거죠. 때문에 계급의식 없이 신선한 독립교회를 원하는, 깨어있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갈보리교회는 장로 없이도 든든히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살아있는 예입니다.

·장로가 없이 어떻게 운영됩니까

▲목양회에서 목사가 목회에만 전념하고, 목양협력기구에서 재정관리를 맡아보며, 청지기회에서 봉사를 담당합니다. 교회의 구조에서 지배적이고 계급적인 것만 제거한 것이죠. 그동안 독립적인 교회가 될까 하는 회의적 시각이 많았지만, 됩니다, 틀림없이 됩니다.

·그러다보면 담임목사의 파워가 너무 강해지는 폐단이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목사의 신앙적, 인격적 성숙이 든든히 서야합니다. 철두철미하게 교회와 교인을 의식하는 인격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지요. 나도 사실은 평생 죽을 때까지 갈보리교회에서 목회할 수도 있었습니다.떠나지 말라고 울고불고 난리치는 교인도 많았고 박조준 목사는 절대 갈보리교회를 떠나지 못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만두고 떠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죠. 이필재 목사도 그럴 사람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평생 해온 목회를 돌아보며 한마디로 정리하면 어떤 목회였다고 스스로 평가합니까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성경말씀에 충실한 목회였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나온 성도들을 위로하고, 힘주고, 용기 주고, 희망을 주는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부담을 느끼고 신경을 쓴다면 교회 본연의 모습이 아니죠. 예수님처럼 조용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세상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박조준 목사는 “미국 초년생이니 많이 지도해달라”고 거듭 당부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박조준 목사는 …

박조준 목사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 신학대학을 나와 영운교회를 개척, 6년간 목회했다.
33세에 서울 영락교회 부목사로 부임한 후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실천신학 석사, 아주사 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 38세때 영락교회 담임목사로 부임, 이후 13년간 목회했으며 84년 사임하고 85년 갈보리교회를 개척해 18년간 시무했다.
그의 목회 스타일은 조용하고, 지적이며,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는 실천신학적 목회로 알려져있다.

글 : 정숙희 기자
사진: 홍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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