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내가 주눅 드는 일’

2003-01-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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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들은 나의 전화 음성을 듣고 “여자분 맞아요?”하고 묻는 때가 있다. 남자 음성이라 하기엔 좀 뭐 하지만 여자 음성으로는 너무나 허스키 하단다. 거기다 외관상으로도 나의 모습이 ‘한 터프’ 한다니 직접 만나보지 않고 전화로만 교제하는 사람들의 의문이 무리는 아닌 듯 싶다.

나는 그 허스키한 목소리로 빵빵한 꿈을 부화시키고 있었다. 찬송을 멋지게 부르고 싶다는 소박하고 예쁜 소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평생 기도 제목이니까.

어떤 사람들은 내가 알토를 위해서 준비된 음성(?)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허긴 피아노 반주가 없는 예배 때도 곧잘 알토로 찬송을 부르고 음도 제법 정확히 낸다.


그런 내가 성가대 석에 서기만 하면 주눅이 드는 것이다. 첫 음도 못 잡고, 소리도 못 내고, 입도 크게 못 벌리고… 30년이 넘도록 크고 작은 성가대에서 봉사를 해 왔는데도 못 고치는 불치(?)의 병이다. 이 병의 원인을 찾아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꿈도 많고 자신도 많던 단발머리 고등학생 시절 음악 실기시험 시간이었다. 지정곡의 첫 소절인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 희망의 별 빛을 바라보라” 여기까지 감정을 모아 열심히 불렀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그만 그만-. 어디서 이 아름다운 클래식을 유행가 부르듯 부르는 거야. 여기가 대중가수 뽑는 데야-. 공부는 안하고 얼마나 유행가를 따라 불렀으면 ‘동숙의 노래’ 식이야.”

아! 그때 나는 무덤에 있어야 했었어. 왜 지금까지 살아있어 이런 무안 아니 억울한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나는 선생님께 변명 한번 하지 못하고 60명의 급우들 앞에서 3학년 6반 반장의 체면도, 나 개인의 인격도 무자비하게 짓밟힘 당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밝히면 그 당시의 나로선 유행가를 부르는 것이 죄라고 알았기 때문에 나는 유행가 한 소절도 불러 본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무덤으로 내려가고 싶을 만큼 억울하지 않았겠는가!

당시는 나와 동갑인 문주란이라는 여고생 가수가 가요계를 떠들썩하게 하던 때였다. 그녀는 내가 다니던 학교와 이웃하고 있던 학교에서 약간은 놀던 학생이었는데 대중가요 가수가 되어 전국에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녀의 음성이 성별을 모를 만큼 허스키였음을 나중에 알았다.) 나는 그녀가 부른 노래 제목이 ‘동숙의 노래’라는 사실조차도 그때 선생님의 입을 통해 알았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음악실을 한번도 가지 않았다. 음악시간이 되면 당번과 바꿔서 나는 교실에 남고 부반장을 인솔자로 보내곤 했다. 30년이 훨씬 더 지나가 버린 사건인데 나는 그 일로 인하여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일에는 장애가 생겨 버렸던 것이다. 아무리 자신을 가지려고 해도 그것은 치료될 수 없는 흉터로 남아 성형도, 정형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지천명의 나이이다. 이 나이가 되는 세월을 사는 동안 나 자신도 수없이 그 음악선생 같은 실수를 해서 다른 사람들을 불구자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30여년 전 이런 공부를 했으니 이제 박사학위쯤 받아야 할텐데 여전히 내가 갖고 있는 30cm자로 다른 사람의 50cm를 재고 있는 나를 보면서 아- 나는 정말이지 주눅이 든다.

최 미 화
(아름다운 동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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