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네 손가락의‘즉흥 환상곡’

2003-01-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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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온 장애인 피아니스트 이 희 아양

하루 10시간씩 피눈물 나는 연습
장애극복 힘주신 하나님께 감사


‘네 손가락의 천사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는 이희아(18)양은 짧은 두 다리와 네 개의 손가락이란 선천적 신체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이란 단어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한 손에 두 개씩, 모두 합쳐 네 개의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희아양은 장애인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 손가락 열 개의 정상인이라도 피땀어린 연습 없이는 소화하기 힘든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희아양의 모습은 경이로움에 가득한 감탄을 자아낸다.

뛰어난 음악적 감수성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연주는 둘째치고 라도 흑백 건반 위로 빠르게 움직이는 희아양의 손가락을 가만히 쳐다보면 마치 열 개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춤추는 듯하다.

지난 14일 밀알장애우 장학금 모금 만찬에서 초등학생 같은 작은 체구의 이희아양은 무릎까지밖에 없는 두 다리로 씩씩하게 무대에 올라 환상적인 피아노 연주를 선사했다.

미국 방문은 처음이라는 희아양은 “미국에 오니 일반버스에도 휠체어 장애인들이 불편 없이 탈 수 있는 전동장치가 설치돼 있네요. 한국이 어서 빨리 장애인 문화를 고치고 특수학교를 일반학교와 통합해 동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펼쳤으면 좋겠어요”라고 다부지게 말했다.

희아양은 태어날 때부터 네 손가락이 전부였고 선천성 기형으로 인해 막대기처럼 가늘게 붙어 있던 두 다리도 절단해 무릎밖에 없다. 6세가 되면서 어머니 우갑순씨가 연필이라도 제대로 쥘 수 있게 희아의 손가락에 힘을 길러 주려고 피아노를 배우게 하고 싶었지만 손가락 장애가 있는 희아양에게 피아노 선생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였다.

천운으로 만난 피아노 선생 조미경씨의 엄한 훈련이 시작되면서 희아양은 손가락에 힘이 없어 소리가 나지 않는 건반을 하루 10시간 두드리느라 몸살을 앓고 네 손가락 끝에 물집 잡히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1년 후인 92년 희아양은 장애자라는 이유로 서류전형에서 탈락했지만 의지를 굽히지 않고 전국 학생음악연주평가회에 참가, 와이만의 ‘은파’를 연주해 최우수상을 따냈다. 일반 참가자들과 당당하게 경쟁해서 따낸 상이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한 심사위원이 ‘손가락이 네 개 인줄은 몰랐다’고 놀라워했어요. 정말 기뻤죠”라고 당시를 기억하는 희아양은 “장애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함께 주신 하나님이 0번째로 고맙고 다음은 어머니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첫 번째, 피아노 선생님이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는 지난 5월 ‘희아와 음악친구들’ 공연에서 함께 연주했던 바이얼리니스트 마츠노 진”이라고 밝혔다.


장애인 특수학교인 주몽학교에 재학 중인 희아양은 “어려서부터 헬렌 켈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 “미국에 와보니 내가 왜 장애인 문화가 후진국 수준인 한국에서 태어났을까 하는 회의도 들었지만 나처럼 행복하게 자란 장애인들이 한국 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태어나서 한 번도 집밖에 나와보지 못한 장애인들이 거리낌없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한국의 장애인 문화 개혁을 홍보하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임을 느꼈다”고 말했다.

쇼팽의 ‘왈츠’와 ‘즉흥환상곡’ 리스트의 ‘사랑의 꿈’ 엘가의 ‘사랑의 인사’ 등 로맨틱하고 사랑이 넘치는 곡을 좋아한다는 희아양은 사랑에 관한 시집 읽기를 즐기고 컴퓨터에도 능해 요즘은 이메일(heeah1004@yahoo.co.kr)로 받은 팬레터를 일일이 읽고 답장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지만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게 더 큰 소망”이라고 밝히는 희아양은 앞으로 2~3주간 미국에 체류하면서 디즈니랜드도 가보고 라스베가스도 구경하고 싶다고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하은선 기자> eunseonha@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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