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애인사역 수준높인 공신”

2003-01-0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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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밀알선교단의 이영선 단장(52)은 전부터 꼭 한번 크게 소개하고 싶었던 인물이다. 3년여전 LA에 나타나 2년반전부터 밀알선교단 단장을 맡아온 그는 짧은 동안 조용하지만 놀라운 능력으로, 잡음 많던 이곳 장애인 사역단체들을 화합시킨 주역이다. 외람된 의견인지는 몰라도 최근 몇 년새 한인커뮤니티에서 장애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밝아지고, 여기저기서 이들을 위한 활동이 활발해진 것은 소리없이 헌신한 이단장의 공로가 절대적이었다고 믿고 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도 사랑과 봉사가 필요한 곳곳마다 반드시 얼굴을 내밀고, 모든 공은 남에게 돌리면서 언제나 겸손한 그가 이번에 세계밀알연합회(회장 이재서)의 사무총장으로 선임됐다. 오는 14일 오후 7시 옥스퍼드 팰리스 호텔에서 취임식을 갖는 이영선 단장을 만났다.

세계밀알연합 사무총장 취임앞둔
이영선 단장

태동단계 밀알사역 맡아 헌신 봉사
‘사랑의 마당축제’등 개최 화합다져



한화그룹 뉴욕지사 근무중 윤화
죽음문턱서 하반신 마비 제 2의 삶



이영선 단장의 저력은 ‘사랑의 마당축제’ 하나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매년 5월과 12월 두차례 남가주의 발달장애인들과 가족들이 함께 모여 봉사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사랑의 마당축제는 2000년 이단장이 처음 시작한 행사로, 2년만에 1,000여명이 참석하는 대형 축제가 되었다. 장애자만 150명 이상, 자원봉사자들 수백명이 참가해 서로 위로하고 돕고 사랑을 나누는 이 행사는 수십개의 교회와 장애단체가 연합해서 벌이는 그야말로 사랑의 축제다.

언뜻 생각하면 장애인 사역을 연합해서 하는게 뭐가 그리 대단한가 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 전의 사정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장애인 단체들이 서로 다투고 비방하기 바빴다. 장애인을 돕고 선교한다면서 무슨 이권이 있는 것도 아닐텐데 경쟁적으로 ‘장애인 모셔가기’에 바빴고, 자꾸 다른 단체가 생겨났으며. 서로 신문에 나오려고 애를 쓰면서, 음해성 전화와 투고가 줄을 잇기도 했다.

그런데 이영선 단장이 나타난 이래 어느 틈엔가 이런 일들이 없어졌다. 그리고 연합행사인 사랑의 축제를 개최해오는 동안 장애선교단체들과 각 교회의 장애 부서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지금은 서로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숨어있던 장애자들이 밖으로 나오고, 부모들이 마음을 오픈하기 시작했으며, 정상인들 사이에 장애에 대한 인식이 크게 계몽된 것은 이단장의 다리역할에 힘입은 수많은 사역자의 노력 덕분이었다고 믿는다.

뭘 어떻게 했길래 2년만에 이렇게 달라졌을까?

“때가 돼서 그런거죠” 이단장은 이말 한마디뿐이다.
그래도 무슨 비결이 있었을텐데...

“사람들이 자꾸 만나야합니다. 만나서 이야기 해보면 별것 아닌 일인데, 서로 등지고 있으면 오해가 쌓이죠. 단체가 많다보면 장애인들이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이야기를 전하게 되는데, 그것이 번져 오해를 낳게 됩니다. 장애인 사역자들은 특히 개인적으로 상처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헐뜯는 말을 듣게 되면 해결이 힘들어지죠. 그러니 자꾸 만나서 풀어야해요”

자꾸 만나다보면 오히려 인간 관계가 힘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양보를 많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때로 상식적으론 얘기가 안 되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양보합니다.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하지요. 또 연배가 높은 분들은 거기에 맞게 대우해드립니다. 질서가 생겨야 연합도 되니까요. 무엇보다 열심히 연락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연락을 자꾸 해야 안 나오던 사람도 나오고 서로 친해지기 때문에 단체들마다 모임에 한번도 안 나오는 사람에게도 빠짐없이 연락해 소식을 알립니다”


그렇다면 장애인 숫자에 비해 단체가 너무 많은건 아닌지.

“저는 단체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라도 많으면 더 많은 장애인이 혜택을 받으니까요. 큰 단체라 해도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토요일에 실시하는 사랑의 교실만 해도 한 지역에서 20명 수용이 맥시멈입니다. 아이 한명당 봉사자 한명, 때로 장애 정도가 심한 아이는 봉사자가 두명씩 붙어야 하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20명이상 돌보기란 힘들지요. 지금 4개 지역에서 사랑의 교실을 열고 있지만 그래봤자 돌볼 수 있는 아이들이 80명밖에 안되죠. 장애인 숫자, 특별히 자폐증 발달장애인의 숫자는 크게 늘어나고 있어서 더 많은 장애사역이 필요합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이단장은 남가주의 장애사역이 2~3년 전에 비해 크게 좋아졌다고 보고 있다.

“경쟁을 하다보면 전문화되기 마련입니다. 지금도 벌써 어떤 곳은 노인장애인 사역을, 어느 단체는 세미나와 이론에 치중하고, 밀알은 사랑의 교실을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마 1~2년 지나면 이런 전문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질 것입니다”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전도유망한 인재로 인정받았던 이영선 단장은 1981년 한화그룹 뉴욕지사 주재원으로 파견됐다가 그해 9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의사들은 생존가망이 없다고 판단했으나 기적적으로 회생, 눈물겨운 투병 끝에 하반신마비 장애인이 된 그는 그러한 몸으로 열심히 일해 95년 한화그룹 미주본부 관리이사로 승진하는, 믿을 수 없는 인간승리의 표본이 되었다. 99년 5월 남가주로 이주한 그는 노인복지자문회사를 운영하며 미주한인장로회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던중 태동단계에 있던 밀알사역을 맡게된 것이다.

한창 나이 서른에 치명적 장애인이 된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상하게도 큰 갈등이 없었어요. 장애를 일찍 받아들였기 때문이죠. 인간적인 갈등을 거치지 않고 신앙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오히려 저보다 아내가 더 반발하고 괴로워하더군요. 한동안은 내가 하는 장애사역에 협조하지도 않을 만큼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장애를 받아들였다면, 장애인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자신의 삶에서 잘 된 일이라고 보는걸까?

“내가 원하는 삶의 길로는 전혀 살지 못했죠. 내가 원하는 방향, 나의 비전과 야망대로는 가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필요하신 길로 더 많이 쓰신다는 생각을 합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이익 보신거죠(하하)”

그가 원하는 것은 밀알선교단이 ‘해체’되는 것이다.
“밀알이 처음 시작한 대로 가기를 가장 원합니다. 선교단이란 한시적인 조직이라 목표한 것이 이루어지면 훌훌 털고 해단식할 수 있는 단체입니다. 따라서 항상 투명할 수 있고 역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밀알의 목표는 신앙공동체에 장애인 사역을 접목하는 것입니다. 장애인 사역은 교회라면 당연히 해야할 사역인데 각자의 사정과 조건 때문에 못하는 곳을 위해 다리역할을 하는 것이 밀알의 사역이죠.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그 사역이 모두 완성되어 밀알선교단이 해체되기를 바랍니다”

세계밀알연합 사무총장 취임앞둔
이영선 단장


세계밀알연합은 …

세계밀알연합회의 ‘사무총장’은 이영선 단장을 위해 신설된 직함이다.
2004년 밀알운동 창립 25주년을 준비하는 총 책임자로, 전세계 밀알의 정신을 하나로 묶는 기념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이다. 서울의 본부 사무국을 남가주에도 추가 개설함에 따라 서울과 LA 사무국을 총괄하는 직무를 맡은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처음으로 미주에서도 19명의 이사를 세웠다. 남가주에서는 오래전부터 장애인 사역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신용규목사, 한규삼목사, 정재훈장로, 김효선교수가 이사로 위촉됐다.

다른 단체 같으면 거창한 이벤트들을 잔뜩 기획할텐데, 밀알의 25주년 기념사업은 ‘출판’이란다. 그동안 한국, 미국, 유럽 각지에서 일하면서 나온 자료, 논문들, 그 영성을 정리해 한데 묶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작업이다.
이단장은 이 사업을 “전세계 밀알운동이 통일성을 갖도록 정리하는 일”이라고 소개하고 “신학적인 바탕아래 실제 적용하고 풀어가는 방법을 확실하게 제시해 밀알 시스템과 사역자 훈련을 표준화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먼저 해야할 일”이라고 소개했다.

밀알운동은 1979년10월 이재서 회장에 의해 처음 시작돼 현재 한국내 28개 지역, 해외 32개 지역 등 총 60개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주에서는 1987년 필라델피아에 처음 설립된 것을 시작으로 남가주밀알선교단은 1997년, 세계밀알연합회는 1995년 출범했다. 한국에 장애인 선교단체가 300개가 넘지만 해외까지 지부를 두고 활동하는 단체는 밀알선교단이 유일하며, 운영의 순수성과 투명성으로 교계는 물론 일반사회에서도 모범적인 단체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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