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작은 것부터 한가지씩

2003-01-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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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묵은해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집 대청소를 시작했다. 새해를 맞이하는 부푼 가슴으로, 그리고 좀더 나은 앞날을 기대하며, 구석구석 정리 하다보니 얼마나 복잡하고 버릴 것이 많은지.... 아깝다고 모아 놓은 구질구질한 살림살이며, 옷가지 등 어떻게나 많이 나오는지. 옷도 안 입는 것은 선교지에 보내려고 따로 싸놓았다.

무엇이든지 이제는 간단하고 편한 것이 좋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것 아니면 버려야되겠다 생각하면서 책상과 책을 정리하다가 작년에 세워 놓았던 ‘신년 계획표’를 보게 되었다. 제법 이상적이고 보기 좋았다. 몇 가지나 실천되었나 살펴보니 대여섯 가지중 한 두 가지 정도였다. 자주 점검하지도 않았지만 무엇을 계획했는지조차 까맣게 잊고 있던 것도 있었다. 나 혼자만 볼 수 있게 잘 숨겨두고는 오래 동안 잊고 있었다.

읽어보니 거창한 계획과는 달리 나는 너무나 멀리 와있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그 계획은 너무 과한 욕심이었거나, 아니면 나의 능력이나 노력부족이었나? 해마다 연초에 나름대로 기도하면서 바라던 이상적인 목표를 세워놓고는 매일 매일 부딪치는 삶 속에서 목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마치 밀려오는 파도에 휩싸여 허덕이며 살아온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상적인 계획들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 올해에는 이상적인 거창한 계획보다는, 무용지물이 될 뜬구름 같은 목표보다는, 구체적으로 내 생활 속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 아주 작은 것부터 한가지씩 고쳐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지난해를 돌이켜 볼 때, 내게 가장 안 되는 부분은 성급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나는 무척이나 급한 성격의 소유자인가보다. 그래서 매사에 빨리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설거지도 즉시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고, 그래서 가끔 사기그릇이나 컵을 깨기도 하지만.....휴지나 더러운 것을 보면 다른 것 보다 먼저 치워야 된다.

한번은, 어느 날 저녁에 많은 손님들이 오시기 때문에 음식준비며 청소도 해야하니 무척 바빴다. 아들이 학교 간 후 그 방부터 치워야 할 것 같아 후닥닥 먼지를 털고, 쓸고, 닦기를 시작했다. 그러다 살짝 컴퓨터를 건드려 넘어뜨렸다. 그 후부터 아들이 컴퓨터가 이상하다며 잘 안 된다고 한다. 금방 새로 사줄 형편이 못되다보니 가끔 친구 집에 가서 숙제를 하고 돌아오곤 한다. 아들에게 얼마나 미안하고 창피한지.

어디 그 뿐인가, 안경이나 열쇠는 자고 깨면 찾는 것이 아닌가. 항상 제자리에 두면 쉽게 찾을 터인데도. 그리고 어디 나갈 때마다 빠뜨린 물건을 가지러 다시 왔다 가곤 하지 않는가, 또한 급히 서두르며 운전을 하다가 티켓을 받지는 않았던가, 부끄럽지만, 말은 또 얼마나 빠른가.
이 모든 것이 급한 마음이 앞서 서두름에서 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바쁘다는 이유 때문에, 아니면 급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채 행동이나 말이 앞서 후회를 하거나, 혹은 시간적, 물질적으로 손해를 본 나의 경험을 돌이켜 보며 깊이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바쁠수록 돌아가라’ 는 말이 있듯이 침착해야 되겠는데, 바쁜 것 때문에 나 자신을 다스릴 순간조차 놓치고 살아서야 되겠는가?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는 성경말씀이 생각난다. 그만큼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해에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 전에, 그리고 보기 좋고 근사한 계획은 세워놓지 않아도, 나 자신에게 나의 급한 마음 잘 다스려 더 이상 후회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도록, 작은 것부터 한 가지씩 고쳐가겠노라고 굳게 다짐하며 마음먹었다. 화창한 아침 햇살을 바라보고, 창문을 활짝 열면서.....

신 혜 원
(새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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