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사회 초기 교회 이민자들 ‘영육 쉼터’

2003-01-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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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픽업부터 아파트·직장 알선
삭막한 이민생활 유일한 공동체
숫자 늘고 규모 커지자 ‘세과시’변질도


미주 한인사회가 100세가 되었다. 그것은 곧 이민교회가 100세가 되었음을 뜻한다. 한인사회와 한인교회는 궤를 같이 해왔기 때문이다. 그 100년 동안 이민교회는 개울물이 계곡을 돌아 내려와 도도한 강물을 이루며 바다로 뻗어나가듯, 이민사회의 중심에서 많은 역할을 하며 놀랍게 성장해 왔다. 그 100년 동안 교회의 모습과 역할은 이민의 시기에 따라 달라졌으며 그에 따른 교회의 이미지도 변화해 왔다. 그리고 그 변화에는 긍정적인 점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 또한 적지 않다.

‘이민교회’라는 독특한 성격의 공동체를 이해하지 않고는 지난 역사와 현재의 모습, 미래에의 기대를 이야기하기 힘들다. 미주한인사회에서 교회는 종교적 기능뿐 아니라 사회적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공동체다. 신앙 공동체인 동시에 사교적인 공동체다. 그것이 한국에서는 교회에 나가지 않던 사람들이 이민 오자마자 교회부터 찾는 이유이고, 미주 한인은 70% 이상이 크리스천인, 매우 특이한 현상을 이루게된 이유다.


시대별 교회의 역할을 살펴보자.

1900년대 초기 이민자들에게 교회는 고향이요, 안식처였고, 유일한 한인 공동체이며 신앙의 산실이었다. 교회에 나가서만 한인들을 만날 수 있고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위로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는 교회들이 큰 성장과 변화 없이 조국의 해방과 건설을 위해 힘썼고, 이러한 역할은 초기 이민이 중단되고 소수의 유학생들과 미군과 결혼한 여성들이 제한적으로 미국으로 건너오던 1950년대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965년 이후 이민문호가 개방되고 새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교회의 역할은 훨씬 적극적인 사회봉사기관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복덕방 목회’라는 말이 있다. 목사가 교인을 얻기 위해 이민 오는 사람을 공항에서부터 픽업해 아파트 얻어주고, 잡도 찾아주고, 아이들 학교 입학까지 온갖 심부름을 다해주는 목회를 일컫는 말이다. 요즘과는 비교도 할 수 없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낯설고 말 설은 환경에서 막막한 이민생활을 시작하는 이민자들에게 교회와 목사는 심리적으로나 생활면에서나 신앙적으로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 때만 해도 교회간 경쟁이나 내분도 없었고 서로 단체장이 되겠다고 싸우는 일도 없었다. 목사회나 기독교교회연합회(남가주 기독교교회협의회의 전신)가 처음 조직된 것이 그 시기인데 서로 회장을 안 하려고 양보해 교단순서로 돌아가며 맡았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전해진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이민물결이 밀려들면서 이민교회는 크게 성장했다. 수적으로도 팽창했고 규모면에서도 대형화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신앙적 동기보다는 사회적 욕구에 의해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교회는 조금씩 순수성을 잃었다고 평가된다.

현재의 교회들이 가진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건축 규모와 교인 숫자를 기준으로 한 교세 확장에 집착해 있다. 교회내 직분제도가 계급화 되어 있다. 유행처럼 해외선교에 치중한다. 장애자, 이혼자, 마약중독자, 노숙자 등 소외된 이웃에 대한 손길은 형식적이다… 이외에도 자질부족의 목회자 양산이라든지, 기복신앙을 강조한다든지, 성도들이 교회에만 충실하고 실제 삶에서는 모범을 보이지 못한다는 등의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은 한두 가지로 짚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교회는 지금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이민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미래의 이민교회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
많은 목회자들은 이제는 목회와 교회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대와 문화가 완전히 달라졌고 무엇보다 성도들의 신앙 수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초기 이민교회와 후기 이민교회가 완전히 맥이 끊어져 있다는 것이다. 미 본토 최초의 교회인 LA 한인연합감리교회 한 곳을 제외하고는 초기 이민교회에 다니던 2세들은 후기 이민자들이 몰려오면서 교회를 모두 떠나고 현재의 이민교회는 70년대 이후 들어온 새로운 이민자들에 의해서만 운영되고 있다.

이 현상은 지금 우리의 2세와 또 그들의 후손이 미래에 어떻게 될 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1,000개가 넘는 남가주의 한인교회들, 1,000만달러가 넘는 수많은 대형 교회건물들이 불과 몇십년 후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지도 모른다.
이민교회는 이제 나이가 백살이 되었다. 나이 값이라는 말이 있다. 이민교회도 백살이라는 나이 값을 하면 좋겠다. 성숙하고 건강하며 이민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민교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인교회의 역사

1903년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태동
본토는 1904년 LA연합감리교회가 시조

하와이 첫 이민자 102명중 50여명은 인천내리감리교회 출신의 기독교인들로, 미주 한인사회는 기독교인들이 세운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해외에 설립된 첫 한인교회는 1903년 11월10일 창립된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그런데 이 교회는 후에 독립운동의 방법을 놓고 내분이 생겨 1918년 ‘이승만박사 교회’라고 불리는 ‘한인기독교회’가 갈라져 나왔으니 이민교회는 첫 교회에서부터 분열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바로 다음해인 1904년 하와이에 한인교회가 무려 14개나 세워졌다. 당시 교인수는 모두 402명. 그로부터 10년 후엔 하와이에만 39개의 교회에 교인이 2,800명으로 늘었다.

미 본토에서는 1904년 3월11일 프랜시스 셔먼 선교사가 창립한 ‘LA연합감리교회’가 최초의 교회로 알려진다. 그 다음 해인 1905년에 ‘상항 한국인연합감리교회’, 그리고 1906년에 제퍼슨장로교회로 불리던 ‘나성 한인연합장로교회’가 세워졌다. 1914년에 오클랜드 한인감리교회, 1919년 시카고한인감리교회, 1921년 뉴욕감리교회가 창립됐다.

유의영 교수(칼스테이트 LA)에 의하면 미국 본토 내 교회 숫자는 한인인구와 비례하며 증가해 30년대에 9개이던 교회가 59년 16개, 67년 30개로 서서히 증가하다가 유학생이 많아진 70년대에는 100개, 이민이 몰려오기 시작한 80년대에는 1,000개, 90년대 이후 3,000개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해마다 북미주 교회수를 조사하는 크리스천 투데이에 따르면 교회수가 최고치에 달했던 시기는 1999년으로 미국과 캐나다에 총 3,415개가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안정세를 보여 2002년 현재 미국내 한인교회수는 총 2,924개로 집계됐다.

남가주에서 70년대 이전에 설립된 교회들은 다음과 같다. ▲LA연합감리교회(1904년)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1906년) ▲대한인 기독교회(1936년) ▲기독교가정교회(1941년) ▲LA한인침례교회(1957년) ▲독립장로교회(1959년) ▲한국인연합교회(1965년) ▲베다니한인교회(1965년) ▲성바울교회(1966년) ▲한인그리스도의 교회(1966년) ▲나성한인제1교회(1967년) ▲포모나한인교회(1968년) ▲나성복음성서교회(1969년) ▲한인중앙교회(1969년) ▲한인선교교회(1969년) ▲한인기독인교회(1969년) ▲웨스트민스터한인장로교회(1970년) ▲윌셔한인장로교회(1970년) ▲동양선교교회(1970년) ▲나성성결교회(1970년) ▲나성영락교회(1973년)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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