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남편과 나

2002-12-27 (금)
크게 작게
그는 말수가 적다. 감정 표현은? 말도 말아라. 내가 먼저 웃지 않는다면 일년 내내 가도 그의 미소를 한번 볼까 말까 이다. 그런 답답한 사람과 어떻게 사느냐고?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난 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 출석하던 교회의 대학부 모임에서였다. 서로 대화도 없었고 교제도 없었는데, 졸업을 앞두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던 12월 어느 날 우연히 그와 함께 샤핑을 하다가 그만 폭 빠져버렸다. 이유인즉 지극히 간단하다. 어딘가 모르게 믿음직스럽다. 창백한 얼굴과 입을 꾹 다물고 말없이 걷는 모습이 너무도 멋지다. 뭐 이런 이유로. 그때는 그렇게도 순진했었지.
하나님과 양가의 축복 속에 결혼한 우리는 처음 얼마동안은 행복하게 잘 지냈다. 그러다가 가끔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내가 그렇게도 매력을 느껴 끔벅 넘어갔던 남편의 그 말없음과 표현 없음 때문이었다.
감정이 풍부하고 활달한 나에게는 남편의 그 조용함이 맞지를 않았던 거다. 그러다가 내 나름대로 지혜가 생겼는데 그래,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런 남편을 도우라고 하나님께서는 풍부한 감정과 활달한 성격을 지닌 나를 그의 아내로 주신 것 아니겠나. 성경말씀에도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드실 때 남자의 돕는 배필로 만드셨다고 돼 있어.
사실 남편은 나를 있는 그대로 다 받아주지 않는가. 게다가 나의 약점을 남편은 강점으로 다 갖고 있고. 투철한 책임감, 성실성, 인내심, 시간관리 잘하고, 규모 있고, 변덕스럽지 않고, 일편단심 아내 사랑하고, 양보 잘하고, 헌신적이고.....다 열거하기에도 벅찬, 타의 추종을 불허할 그의 장점들, 거기다 웃지도 않고 남을 웃기는 뛰어난 유머감각은 또 어떻고.
나 자신도 완벽하지 않은 주제에 그의 장점들은 접어두고 한 두 가지 단점(연애할 때는 매력 만점이었던)을 가지고 힘들어 할 게 아니라 그가 그의 장점으로 나의 모든 단점을 보완해주듯 나도 나의 장점으로 그를 보완하며 행복하게 살자.
재미있는 사실은 아내의 입장에서 본 남편의 그 단점이 교인들의 입장에서는 큰 장점으로 통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목사님은 치우치지 않아.” “누구에게나 공평하셔. “신실해.”
일단 내가 이렇게 생각을 살짝 바꾸니 우리의 결혼생활이 두 톱니가 맞물려 잘 돌아가듯 매끄러워진다. 성경에는 부부를 짝지어주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돼 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잘 짝지어 주셨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천생연분인 것이다.(평생 원수가 아니라)
가정 환경, 성격, 식성, 취미, 기호가 너무도 다른 우리 부부는 이리하여 잘도 살고 있는 것이다. 서로 이해하며, 주거니 받거니 서로 보완하며. 또한 살아가면서 너무도 닮아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희한해 하면서. 남편은 점점 더 말도 잘하고 웃기도 잘한다. 나는 좀 더 조용해지고(그런데 아무도 안 믿는다). 또 있다. 나 또한 남편 따라 곱창 천엽 따위를 게걸스럽게 잘 먹어치운다.
우리의 생이 다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이렇게 서로 사랑하며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 거다. 하나님이 보시고 빙그레 웃으시겠지. “그래, 잘한다 얘들아.”

신 은 실
(오렌지카운티 한인 교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