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고싶은 사람들

2002-12-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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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였다. 날씨는 서늘해지고, 몸이 저절로 옴츠러지며 몸과 마음이 바빠 허둥대기 쉬운 그때였다.
방과후의 애들을 데리고 마켓으로 가려는데 나도 모르게 “어머, 내 지갑… 어디에 두었지?” 하는 순간 갑자기 온 몸이 떨려왔다. 1 시간 전에 월마트에 갔다가 화장실에 들렀었으니까 혹시 그곳에 놓고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 가슴은 더욱 뛰기 시작했다. 그 지갑 안에는 통장, 각종카드, 그리고 찾아놓은 현금 등이 (내게는 거금 이었다)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해질 수밖에.
나는 부리나케 내가 들어갔던 화장실에 가 보았더니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하며 직원이 있는 사무실에 가서 물었다. 안에서 몇 사람이 바뀌면서 책임자가 나오더니 이름, 주소, 생일을 묻는다. 지갑 안에 있는 ID와 대조해 보더니 “You are lucky.” 하면서 내게 지갑을 내 주었다. 얼른 살펴보니 모든 것이 그대로 있었다. 나는 수차례 “Thank you very much.”를 연발하며 나도 모르게 “Thank you God.” 하고 긴 숨을 내 쉬었다.
집에 와서도 그 흥분과 감격이 가라앉지 않아 식구들에게 얘기하고 감사를 나누었다. 그 지갑을 화장실에서 발견하고 고스란히 사무실에 맡긴 그 사람은 과연 누굴까? 분명 크리스천이 아니면 정직한 도덕인 일까? 나는 곰곰 생각하다가 그 다음날 월마트 직원들에게 감사의 카드를 보냈다. 짧고 서툰 영어이지만 아들에게 물어가며 진심으로 나의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정작 그 지갑을 발견해서 사무실에 맡긴 그 사람은 어떻게 찾아서 인사를 해야 하는가 말이다. 내가 갚을 수 없는, 고맙다는 말조차 전할 수가 없는 그 사람이 내겐 천사가 아니었던가?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몇 주 전 내가 다니는 학교 화장실 안에서 누가 놓고 간 지갑을 발견했다. 어쩌면 내가 놓고 나왔던 상황과 똑같았다. 그 때 일이 떠올라 얼른 사무실에 맡기고 왔다. 얼마나 마음이 가볍고 흐뭇한지 마치 빚을 조금이라도 갚은 기분이랄까?
바쁜 이 계절이 되면 나는 생각나는 감사의 대상자를 혹 빠뜨릴세라 미리미리 노트에 적어본다. 남편이 새롭게 교회를 시작할 무렵 뜻하지 않은 안부전화로 인해 몇 년간 우리의 생활비를 보조해 주신 분, 누룽지 말린 것과 된장 고추장을 보내주신 분들 그것을 받고 먹을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눈물을 먹는 듯, 그것은 그 당시 우리에겐 두고두고 비상식량이 되었었다.
그 외에도 어려움을 함께 하며 교회를 섬기던 많은 분들,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던 인근 각 처에 흩어져 있는 교인들, 친구들, 가족, 친지, 선생님들, 학부모님들, 그리고 이름이나 얼굴조차 모르는 찾을 수도 없는 이국인들……. 그분들은 모두 내게 시시때때로 천사가 되어 주셨던, 잊을 수 없는 분들이다. 지금도 그 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지며 한없이 보고 싶어진다.

신혜원 (새롬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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