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원작 깊은 맛 - 초연 분위기 꽉찬 무대로

2002-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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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mber Music in Historic Cites


18~19세기 유럽의 귀족들은 참 품위 있게 살았다. 눈부신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아름다운 저택에서 악사들이 연주하는 하이든의 실내악을 청해 들었고 요한 스트라우스에 맞춰 왈츠를 추었으며 그들의 대화에는 호머와 셰익스피어의 구절들이 물처럼 흘러나왔다. 남자들은 실크 셔츠에 프록 코트를 멋지게 조화시켰고 여자들은 정원에 만발한 꽃들처럼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현란할 정도의 드레스와 보석으로 치장하며 뽐냈다.

귀족들의 신선 놀음 가운데 가장 부러운 것은 아름다운 저택에서 벌이는 그들만을 위한 음악회. 이런 목적으로 웅장한 오케스트라는 적합하지 않다.
열 명 안팎의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실내악은 섬세하게 표현되는 음악을 만져질 듯 가깝게 즐길 수 있어 좋다. 이무지치, 부다페스트 스트링스, 성 마틴 인더필스 아카데미 등의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엮어내는 부드러운 실내악의 선율은 감성의 밭을 촉촉이 적신다.
‘다 카메라 소사이어티’(Da Camera Society)는 귀족의 정원에서 열렸을 법한 실내악 연주를 21세기 캘리포니아에 재현해 내고 있는 단체. 17세기 체임버 뮤직을 일컫는 이탈리아어 무지카 다 카메라(Musica Da Camera)에서 이름을 따왔다. 체임버 뮤직이 본래 작곡되었던 목적 그대로 좀더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의 콘서트를 마련하고자 다 카메라 소사이어티가 창립된 지도 올해로 벌써 30주년을 맞는다.


특히 1980년부터 시작된 ‘역사적 건물에서의 체임버 뮤직’(Chamber Music in Historic Cites) 시리즈는 전세계 최고의 실내악단을 초청해 LA의 가장 역사적이고 아름다운 건물에서 콘서트를 마련하는 프로그램. 지난 23년간 이 시리즈는 아주 특별한 공연 문화를 개척해 왔다.
역사적 건물에서의 체임버 뮤직 시리즈는 말 그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독특한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그 동안 열렸던 음악회를 살펴보면 패사디나의 쁘띠 트리아농에서 있었던 베르사이유 살롱 뮤직 콘서트, 샌타아니타 경마 클럽에서 열린 하이든의 기마병 사중주 연주, 이탈리아 와이너리 저택에서 있었던 비발디 콘체르토 공연, 시에라 마드레의 투스칸 빌라에서 열린 메디치 궁정 음악회, 현대 해양 박물관에서의 수상 음악 콘서트 등등이다.
귀족의 주문에 의해 작곡된 음악이 초연 되던 바로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경험은 아주 특별하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3일 일요일 오후 4시. 빌트모어 호텔(Biltmore Hotel) 그랜드 볼룸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실내악단 부다페스트 스트링스(Budapest Strings)의 콘서트가 열렸다.
푸셀과 보케리니의 바로크 뮤직은 물론, 모차르트와 드보르작을 비롯해 헝가리 작곡가들의 작품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들려줬다. 세련되고 화려한 스트링 톤을 자랑하며 잘 숙성된 와인 맛처럼 관능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들의 연주가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밀었다 당기고 조였다 풀어 가며 서로 화답하는 연주자들의 모습은 온 몸에 짜르르 전류가 흐르는 느낌을 전달한다.
물론 그들이 즉흥곡을 연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교감은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에 나오는 표현을 상기시킨다. ‘어떻게 두 사람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그들의 악상을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는지, 그러면서 결코 한 음부도 화음을 깨지 않고 있는지’ 말이다.

2002~2003년 시즌에 남은 행사
2002~2003 시리즈의 남아 있는 행사는 다음과 같다. 아주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라 티켓이 쉽게 매진되니 예약을 서두르는 편이 좋을 듯. 공연에 관한 문의는 (213) 477-2929. 웹사이트
www.dacamera.org

▲11월15일 금요일 오후 8시. Doheny Mansion(10 Chester Pl. Los Angeles CA90007)의 폼페이 룸에서는 굴드 피아노 트리오(Gould Piano Trio)의 콘서트가 열린다.
Gould Piano Trio는 LA타임스에서 풍부한 기교와 힘이 있는 연주라는 호평을 받았던 앙상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트리오 E단조(Op.67), 슈베르트의 현악 트리오 B플랫(Op.99) 등을 들려준다.
티켓은 51달러, 74달러.

▲11월 17일 일요일 오후 3시. First Congregational Church of Los Angeles(540 S. Commonwealth Ave. Los Angeles 90020)에서는 무지카 후마나 옥스퍼드(Musica Humana Oxford)의 미국 데뷔 무대가 펼쳐진다. 탈리스의 모테트, 윌리엄 버드의 미사곡 등 16~17세기 전통적인 영국 코랄의 아름다운 화음이 스테인드 글래스가 아름다운 장엄한 예배당에 울려 퍼질 예정.
티켓은 29달러, 33달러, 36달러.

▲12월 8일 일요일 오후 4시. Immanuel Presbyterian Church(3300 Wilshire Bl. Los Angeles CA 90010)에서는 웨이버리 콘소트(Waverly Consort)가 선사하는 르네상스 크리스마스 축제 음악회가 열린다. 1927년에 건축된 임마누엘 장로 교회는 남가주에서 가장 프랑스 고딕 성당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건물. 13명으로 구성된 앙상블은 전통 의상을 입고 중세의 악기들을 연주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맞게 할 것이다. 티켓은 30달러, 35달러, 40달러.
2003년 1월에도 도헤니 맨션에서의 Pacifica String Quartet 공연, 2월 윌셔 이벨 극장에서의 Orlando Consort의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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