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야간 비행

2002-11-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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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적 야경 1시간…‘속세의 번뇌’도 훌훌 털고


서머타임이 해제되고 나서는 밤이 무척 길어졌다. 5시 정도면 이미 어둑어둑해지니 아침에 해를 보지 않고 사무실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하루 종일 해 바라기를 할 수 없어지는 셈. 밤이 길어지니까 해 아래서만 가능한 줄 알고 있었던 우리들의 주말 보내기도 왠지 위축된 듯한 느낌이 든다. 밤 시간을 이용한 좋은 주말 보내기 거리가 어디 없을까 찾아보던 하워드 리씨(재정 전문가)의 눈에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야경을 헬리콥터를 타고 돌아보는 프로그램이 번쩍 눈에 띄었다. 재미 한인항공인협회(KAAA)에 연락을 하니 교관 B. J. 김씨가 4인승 경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많은 소규모 항공사에서 마련하고 있는 헬리콥터 투어(Helicopter Tour)는 해질 무렵부터 시작해 밤하늘의 별처럼 도시가 밝아오는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관광 프로그램.
하워드 리씨의 아내 준 리씨. 항상 그녀의 기대를 넘어서는 놀라운 선물을 안겨주던 남편이었기에 주말 저녁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손길을 이끌었을 때도 기분 좋은 기대와 함께 외출준비를 할 수가 있었다. 공항이 가까워오자 그녀의 가슴은 또 다른 설렘으로 솜방망이 질 친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프로펠러가 요란한 굉음과 함께 빠르게 돌아가는 순간은 늘 뭔가 대단한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조짐과 함께 몇 분 앞으로 다가온 비행을 기대하게 만든다. 드디어 이륙. 낮이었다면 비행기가 고도를 높임에 따라 가까이 있던 차와 집들이 성냥갑만 해졌을 테지만 밤에는 사뭇 다른 모습. 별빛처럼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는 하워드 리씨는 쌩 떽쥐뻬리의 ‘야간비행’을 떠올린다.
바다 물결로 항구가 가까워졌음을 아는 것처럼 평온한 구름이 보일 듯 말 듯 그리는 잔주름과 그 고요함을 보고서 조종사 파비앵은 밤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다고 했다. 사람들의 집에 밝혀진 불빛들이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농부들은 자기들이 밝힌 등불이 그 검소한 식탁만을 비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치 무인도에서 절망에 빠진 그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서서 램프를 흔들고 있기라도 하듯, 그 불빛이 보내는 신호는 80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사람들에게도 전해지는 것이다.”
비행기에 올라앉을 때면 항상 갖는 느낌이지만 LA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비행기에 앉아 펼쳐지는 세상을 내려다보자니 그 아래에서 왜 그렇게 아옹다옹, 옥신각신 살았나 싶어진다.
출발은 샌타모니카 공항. 밤인데도 샌타모니카 피어의 퍼시픽 공원에는 롤러 코스터에 불이 반짝거리는 것이 축제처럼 들썩거리는 모습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을 비롯한 부호들의 주택가 벨에어를 지나 베버벌힐스 상공을 난다. 이어지는 선셋 대로 선상은 나이트 클럽 록시 등 도시의 화려함을 찾아 나선 젊음으로 넘실대고 있었다.
할리웃 사인을 지나 눈앞에 펼쳐지는 LA 다운타운의 반짝거리는 불빛은 야간비행의 절정. 지난 여름 ‘대-한민국’의 함성이 아직도 들려올 것만 같은 스테이플 센터를 지나 콜러시엄과 USC 캠퍼스 상공을 난다.
LA 국제공항 인근에서는 아주 낮은 고도로 저공 비행을 한 후, 이어 남가주의 대표적인 바닷가인 레돈도 비치, 킹 하버, 마리나 델레이를 지난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가까운 거리에 두고 있으면서도 왜 자주 오지 않았던 걸까. 태평양을 끼고 주택가에서 번져 나오는 평화로운 불빛을 보자니 왠지 모를 묘한 그리움이 가슴팍에 차온다.
다시 샌타모니카 공항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60분. 조금은 아쉽기도 하지만 일상을 관조하는 마음의 여유를 갖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야간 항로의 개설이라는 위험한 자유의 작업에 참여했던 쌩 떽쥐뻬리의 별일까, 그가 만났던 어린 왕자의 별일까. 저만치서 반짝이고 있는 아름다운 별빛은.

투어 프로그램 안내

▲재미 한인 항공인 협회(KAAA)에서는 한 시간동안 시내 야경을 돌아보는 차터 서비스를 최고 3사람까지 100달러에 제공하고 있다. 포모나에 본부를 두고 있지만 승객이 원하는 공항으로 픽업 서비스도 하고 있다. 문의 전화, (909) 596-2268.
▲Island Express Helicopter Service: 롱비치 공항을 출발해 40분간 LA의 야경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1~6인까지 425달러에 헬리콥터 투어를 할 수 있고 선택에 따라 롱비치 인근의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의 저녁식사를 더할 수 있다. 예약과 문의는 (800)2-AVALON 또는 (310) 510-2525.
▲Bravo Helicopters: 왕복 리무진 서비스와 함께 LA 야경을 돌아보는 헬리콥터 서비스를 마련하고 있다. 일인당 가격은 30분에 149달러. LAX의 The Encounter Restaurant에서의 저녁 식사를 포함한 30분 비행은 199달러, 50분 비행은 289달러. 출발은 LAX. 문의 (310)325-9565 또는 (800)77 FLYING
▲Helinet Helicopter Tours: 차터 서비스 전문 업체. 1시간 비행에 4명까지 775달러. 밴나이스에 본부를 두고 있지만 승객이 원하는 공항으로부터의 픽업도 가능하다. 문의 (818)90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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