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은남편 애인은 남자 동성애자에 보내는 애틋한 감정

2002-10-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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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비밀생활’
(His Secret Life)
★★★★

인간의 삶의 흐름을 바꿔놓는 사람들과의 조우가 가진 마법적인 힘과 계급과 성적 취향 그리고 나이와 인종을 초월한 감정에 관한 상냥하고 통찰력 있는 이탈리아 영화다. 주인공과 중요한 관계가 동성애자의 그것이지만 동성애 영화라기보다 내면의 눈을 뜨고 사람을 만나면서 자기 해방을 얻는 사랑과 각성의 작품이다.
로마 교외에서 사업가인 남편 마시모(안드레아 렌지)와 단 둘이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중년 부인 안토니아(마게리타 바이)의 삶은 남편의 교통사고 사로 삽시간에 와해된다. 15년간 남편 위주로 살면서 자기의 동화 같은 생활 밖에는 모르던 안토니아는 죽은 남편이 7년간 혼외정사를 했다는 사실을 발견, 남편의 애인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남편의 애인은 여자가 아닌 미남 미켈레(스테파노 아코르시). 처음에는 이런 사실을 믿으려 않던 안토니아는 미켈레와 자기가 공통점이 많다는 것과 또 미켈레의 삶에 매력을 느끼면서 그와 가까워진다.
서민지역에 사는 미켈레의 아파트는 동성애자와 성전환자 및 이성애자들로 구성된 ‘가족’의 집합소. 자신을 가두어 두었던 안토니아는 미켈레를 중심으로 한 각양각색의 가족요원의 열린 삶에서 감정과 인간적 요소를 흡수하면서 서서히 이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되어간다.
그리고 안토니아는 미켈레를 통해 자기가 몰랐던 남편의 면모를 재발견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미켈레가 공유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와 함께 안토니아의 목가적 결혼생활의 허상이 깨어지면서 안토니아는 미켈레를 사랑하게 되고 미켈레도 안토니아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과연 안토니아와 미켈레는 진정으로 남녀로서 사랑하는 것인가 또는 둘을 결합시켜 주는 요소는 마시모의 죽은 혼인가. 안토니아는 미켈레와 그의 가족과의 짧은 만남 끝에 비로소 세상을 향해 자신을 열고 새 삶과 새 사랑을 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터키 태생의 감독 페르잔 오즈페텍(42)이 동성애자여서인지 동성애자들을 따뜻하고 연민에 찬 마음으로 돌보고 있는데 우아하니 아름다운 바이와 아코르시의 연기가 좋다. 조용하게 마음을 파고드는 사랑과 다른 세상에 대한 개안의 작품으로 감정적 여운이 길게 남는다. 성인용. Strand. 쇼케이스(323-934-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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