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전한 놀이 보급 “만남이 즐거워요”

2002-09-20 (금)
크게 작게

▶ 이 사람의 주말나기

회사 동료 하나가 새로 이사를 갔다며 집들이 초대를 했을 때 심드렁한 표정으로 초청을 받아들였다. 집들이, 생일 파티. 이름만 달랐다 뿐이지 한국 사람들 모임은 뻔하다는 선입견때문이었다. 남자들이 구워온 갈비와 케이더링 해 온 음식으로 식사를 마치고 나면 술 한 잔과 함께 가라오케 시간. 부장님이 부르는 음정도 맞지 않는 ‘옥경이’ 노래 듣기도 하루 이틀이지.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떻게 하면 밥만 먹고 눈치 보이지 않게 빠져 나오느냐가 주요 관건이 된다. 그런데 그 날은 사정이 달랐다. 20여 명의 손님들이 하나도 중간에 떠나지 않고 끝까지 배꼽이 빠져라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갈비에 아교를 넣은 것도 아닐텐데 손님들을 끝까지 붙들어 놓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동료의 친구인 정조해씨(33·사업)는 레크리에이션 전문가. 친구의 집들이에 왔다가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기타를 메고 여흥 순서를 인도했다.
어린 시절, 스카웃 활동할 때 불렀던 캠프 송들을 율동과 함께 부르는 시간을 통해 주의를 집중시킨 그는 짝짓기, 옆 사람 안마해주기 등의 게임으로 돌처럼 굳어진 참석자들의 머리와 가슴을 열기 시작했다. 아이큐 두 자리 숫자인 이들도 쉽게 할 수 있으리라 우습게 생각했던 게임들이 막상 하자니 왜 그렇게 어렵던지.
빠른 속도로 ‘목장 길 따라 밤길 거닐어’를 부르면서 기차놀이를 하다보니 빵빵하던 배가 어느새 쏙 들어갈 만큼 저녁 먹은 것도 금방 소화가 됐다.
초등학교 소풍 때나 장기 자랑, 오락 시간이면 항상 앞에 나가 좌중을 압도하던 정조해씨. 중·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기타 메고 레크리에이션을 지도하던 그는 좀더 체계적으로 놀이 문화를 공부하고자 대학에서도 레크리에이션을 전공했고 YMCA의 레크리에이션 지도자로 오랜 기간 봉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독자들을 위해 추석 때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즐기면서 가족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건전한 놀이 몇 가지를 소개했다. 올 한 해 동안 찍었던 사진을 모아 앨범을 만들고 사진 설명도 함께 써넣는 ‘가족 앨범 만들기’를 통해서는 추억을 되새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또 한 가지의 게임은 가족이 두 편으로 나뉘어 포크, 밥그릇, 프라이팬 등 가위바위보를 상징할 수 있는 주방용품을 동원해 가위바위보를 한 후 이길 때마다 장기 알을 쌓아 먼저 넘어지는 팀이 이기는 것. 시시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말로 들었을 때와 직접 해보는 것이 판이하게 다른 게 바로 게임이다.
가족들이 건전한 놀이를 즐기는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들은 자라서도 창조적인 놀이를 즐기게 된다. 술, 담배, 음담패설, 화투 등 퇴폐적인 놀이 문화만이 우리가 가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면 우리 조상들의 놀이 문화 가운데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건전한 게임들을 연구해 볼 일이다. 궁궐에서 여성들이 항아리에 화살을 던지며 놀았던 투호놀이, 대보름 밝은 달 아래서 펼쳐졌던 강강수월래. 조상들의 멋진 풍류를 되살린 건전한 놀이 문화를 창조해 사람들의 만남과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는 소망으로 그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정조해씨 <사업·레크리에이션 전문가>
<박지윤 객원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