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LA의 소호’

2002-09-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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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 할리웃 랭커심
매그놀리아 Bl. 교차
‘노 호’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살다 온 이들은 하나같이 소호를 추억한다. South Houston에서 So와 Ho의 머리글자를 따 불렀던 소호는 그 이름마저 예술적이다. 휴스턴 스트릿 남쪽, 브로드웨이 서쪽 지구인 소호는 대공황 이후 싼 임대료에 눈을 돌린 화가들이 옮겨옴으로써 예술가들의 거리로 변신한다. 넓고 천장이 놓은 로프트는 아틀리에로 적격이었고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발굴해 그들의 작품을 발표한 갤러리는 57번 가와는 또 다른 새로운 분위기를 창조했다. 소호의 갤러리와 부티크, 레스토랑과 바는 저마다 개성이 독특하지만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결코 산만하지 않고 조화롭다. 여름보다 햇살이 따가운 가을날의 오후, 소호 거리의 세련된 카페에 앉아 진한 카푸치노를 마시다 보면 뉴욕의 코끝 쨍해지는 가을 정취가 온 몸으로 전해져 온다.

요커 출신인 미소 정(Meeso Chung, 패션 디자이너)씨는 소호를 안고 있는 뉴욕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라 얘기한다. 파슨스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던 시절 소호 거리의 개성 넘치는 부티크와 갤러리들은 그녀의 내부에 잠재해 있던 패션과 예술 감각들을 밖으로 끌어 내주었다.
두고 온 고향만큼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이 그리워질 때 그녀는 노호(NoHo)로 발걸음을 향한다. 노스 할리웃(North Hollywood)의 머리 글자를 딴 노호(NoHo)는 여러 면에서 뉴욕의 소호를 닮아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노스 할리웃에는 비어있는 건물 투성이었고 기껏해야 녹음 스튜디오와 웨어하우스가 할리웃의 등줄기 역할을 해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1991년 아카데미 오브 텔리비전 아트 앤 사이언스(Academy of Television Art & Science)가 본부를 옮겨오면서부터 이 지역은 몰라보게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노호는 노스 할리웃의 랭커심과 매그놀리아 블러버드가 만나는 지점을 중심으로 한 일대. 입구에 서 있는 천사 상이 노호를 방문한 이들을 반기듯 날개를 펼치고 있다.
소호처럼 북적거리지는 않지만 노호는 아르 데코 양식의 건물들하며, 독특한 옷들을 진열하고 있는 부티크들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그녀에게 늘 창조의 샘을 제공해 준다.
랭커심 선상의 부티크, 바붐(Vavoom). 입구에 서 있는 인어공주의 의상에서부터 꽃으로 장식한 머리띠, 반짝거리는 비키니, 깃털 달린 머리핀까지 막상 입고 다니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지만 한 번씩 몸에 걸쳐보면서 기분 전환하기에는 딱 좋은 소품과 의상이 가득한 곳이다.
하늘거리는 꽃무늬 패턴의 원피스는 몸에 대보기만 해도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낮 시간 일하기 편하면서 밤 시간에도 화려한 옷을 추구하는 그녀의 브랜드, 미소에도 오늘 나들이에서 본 옷이며 소품들은 많은 영감을 줄 것 같다.
옆집의 아트 코얼리션(The Art Coalition)에는 에이미 로스(Amy Roth)를 비롯해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로컬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크로키 방식으로 스케치 한 누드 이미지에 수채 물감을 번지게 해 완성한 그림은 투박하지만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이 돋보였다.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을 패러디한 에이미 로스의 초상화는 칼로의 열정적인 화풍을 사랑하는 미소 정씨의 시선을 오랫동안 끌기에 충분했다.
긴 나무 막대기에 끼워져 있던 구슬 장식은 알고 보니 반지. 매일 끼고 다니면 여러 사람들로부터 한 마디씩 듣겠지만 가끔씩의 파격으로는 괜찮아 보인다.
그 밖의 목걸이며 팔찌도 세상에 하나씩 밖에 없을 만큼 독특한 디자인들. 장미향 나는 오일, 복숭아 냄새 나는 향에 코를 갖다대는 그녀는 오감이 만족스럽다.
랭커심 아트 센터(Lankershim Art Center)와 함께 아트 코얼리션에서는 로컬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관람하고 구입할 수 있다.
매그놀리아 선상의 빈티지 옷가게 섬원 엘시즈(Someone Else’s). 안 그래도 들러보고 싶었던 곳인데 ‘한 벌에 1달러’라는 사인과 함께 세일 아이템들을 밖에 내놓으니 그녀는 방앗간 지나는 참새가 될 수밖에. 엘비스 프레슬리와 도리스 데이의 음악이 흐르는 매장에 진열된 통 넓은 팬츠와 꽃무늬 셔츠들은 하나같이 시간을 과거로 이끈다.
노호 지역에는 1마일 반경 내에 무려 17개의 공연 극장들이 밀집해 있다. 널찍한 아르 데코 빌딩에 엘 포르탈 극장을 비롯한 3개의 공연 공간을 갖춘 엘 포르탈 아트 센터(El Portal Center for the Arts)는 극장가로서의 노호 지역의 옛 명성을 되찾아주고 있다.
4년 전이었던가. LA오페라에서 ‘나비부인’을 공연했을 때 노호의 극장에서는 연극 무대로 옮긴 ‘나비부인’을 상연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찾았던 삼일로 창고 극장만 한 소극장은 배우의 호흡마저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오프브로드웨이의 무대를 대하는 것 같은 감동을 안겨줬었다. 지금도 이 지역의 극장에서는 창작 연극과 뮤지컬들이 연일 공연되고 있다.
갤러리와 부티크, 앤티크 쇼룸을 구경하다 무거워져 오는 다리를 쉬어갈 카페도 여럿이다. 연극 공연과 갤러리 오픈 전후에는 에클렉틱 카페(Eclectic Cafe)가 좋고 홈메이드 브런치를 즐기고 싶다면 네즈(Ned’s)에 가면 된다. 천사 상 건너편의 스타벅스야 말할 필요도 없고.
볼거리, 먹을거리, 경험 거리가 넘치는 소호. 조금은 사치스러운 것마저도 그녀의 취향에 꼭 들어맞았던 그 거리. 가끔 몸살날 것처럼 소호가 그리워질 때마다 그녀는 노호를 찾을 생각으로 행복해진다.
잠깐 산책을 하려다 하루 종일 자연에 머물게 됐다는 죤 뮤어처럼 그녀는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보고서야 노호에도 저녁이 가까워졌음을 깨달았다.


노호 아트 디스트릭트(NoHo Arts Distict)는 랭커심과 매그놀리아 블러버드 주변에 밀집돼 있다. 101번 N. →170번 W. → Magnolia 출구에서 내려 우회전해 가다 Lankershim과 교차하는 지점 사방좌우로 갤러리, 극장, 부티크, 카페들이 산재해 있다. 매달 두 번째 토요일, 노호에서는 갤러리와 상점 주인들이 주최하는 블락 파티가 열린다. 9월의 행사는 내일(9월 14일, 오후 4-10시). 예술 작품들이 거리에 진열되고 라이브 뮤직과 패션쇼도 펼쳐질 예정.
▲아트 갤러리: Lankershim Art Gallery 5108 Lankershim Bl. (818) 766-0529. Art Coalition 5227 Lankershim Bl. (818) 506-0938 ▲패션 부티크: Alice & Annie 11056 Magnolia Bl. (818) 761-6085. Vavoom 5221 Lankershim Bl. (818) 769-8700. Someone Else’s Vintage Store 11024 Magnolia Bl. (818) 761-6627. ▲카페와 레스토랑: Eclectic Cafe 5156 Lankershim Bl. (818) 760-2233. Ned’s 11108 Magnolia (818) 760-4787. Tokyo Delve’s Sushi Bar 5239 Lankershim Bl. (818) 766-3868 Salomi Indian Restaurant 5225 Lankershim Bl. (818) 506-0130 ▲극장: El Portal Theatre 5269 Lankershim Bl. (818) 508-4200. The Chandler Studio 12443 Chandler Bl. (818) 782-7464 ‘All Men Are Dogs’라는 제목의 뮤지컬 코미디를 10월 12일까지 공연한다.
▲North Hollywood Chamber of Commerce (818) 508-5155. www.nohoartsdistri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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