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 집에 가겠오’(I Am Going Home)

2002-08-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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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½

93세 난 포르투갈의 노익장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감독과 76세 난 프랑스의 명배우 미셸 피콜리가 삶과 연극과 파리에 바치는 송가다. 길게 보여주는 첫 장면인 이오네스코의 연극 ‘왕의 퇴장’에서부터 이 영화의 연극성을 감지케 된다.

인상적인 것은 타이틀 시퀀스의 음악. 손풍금으로 연주되는 샹송 ‘파리의 하늘 밑’은 영화 중간 주인공의 단골 카페 앞 거리의 악사에 의해서 다시 한번 연주된다. 아름다운 도시 파리가 그리워진다.

지극히 문학적인 감독인 올리베이라의 이 작품은 구성과 연기와 진행 속도가 연극 스타일이고 배경음악도 거의 없다. 기록 영화적 사실성으로 노배우의 삶의 해질 녘을 담담하니 그렸다.


파리의 유명한 연극배우 질베르 발랑스(피콜리)는 연극 ‘왕의 퇴장’ 공연 중 아내와 딸과 사위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받는다(이 영화 속 연극에 카트린 드뇌브가 나온다). 질베르는 어린 손자를 맡아 키우면서 반은퇴, 손자와 함께 게임을 즐기며 안락한 노후의 삶을 즐긴다. 그가 커다란 비극을 맡았는데도 삶을 추슬러 단정하니 정리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에이전트가 큰 돈 벌 수 있는 TV 액션영화에 나오라고 제의하는 것을 거절한 질베르에게 이번에는 거절할 수 없는 출연 제의가 들어온다. 미국의 유명 영화감독 존 크로포드(존 말코비치)가 찍는 조이스 원작의 ‘율리시즈’에 나와 달라는 것. 질베르는 영어대사이지만 역이 탐나 영화 촬영에 응하나 자꾸 대사를 실수하다가 갑자기 "나 집에 가겠오" 하며 촬영장을 떠난다.

카메라가 질베르를 따라 다니며 파리의 아름다운 광경을 자상하니 보여준다. 카메라가 이 부분서 아주 장난기가 짙고 또 코믹하다. 질베르의 단골카페와 창가의 고정석 그리고 그와 그의 자리를 좋아하는 손님이 보는 신문들인 르 몽드와 라 리베라시옹과 르 피가로 또 에펠탑과 조각상과 세느강과 각종 상점들.

노배우가 자기의 삶에 감사하며 그것을 즐기는 이야기를 코믹 터치로 그린 드라마인데 피콜리의 연기가 조용하니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성인용. 불어 대사에 영어자막. Milestone. 뮤직홀(310-274-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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