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 위하는 것도 지나치면 병이다”

2002-08-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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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은 고통스럽다. 그래서 누구나 통증을 피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 육체가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병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깊어지고 상처는 더욱 곪게 될 것이다. 통증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신호체계이다.

분노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속에서 분노가 솟아 오른다면 그것은 그 원인과 뿌리를 잘 해소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경보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분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이를 억누르고 마음속에 쌓아두는 경우가 많다. 도가 지나쳐 다른 사람들에게는 생전 가야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끙끙 앓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호인’이라는 말을 들을지는 몰라도 대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병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들로부터 기대하는만큼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것도 아니다.
심리문제 전문가인 헤리엇 브레이커 박사는 이런 사람들을 ‘남 기쁘게 해주기라는 병’에 걸린 환자라고 진단한다.


언뜻 보면 남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자신도 기쁘게 하고 긍정적인 인간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브레이커 박사의 주장이다.
이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대개 “사람 좋다”는 평가를 보상으로 바라지만 실제로 그런 평가를 받지도 못할뿐 아니라 이 때문에 심한 상실감과 고통에 시달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브레이커가 쓴 ‘남을 기쁘게 해주기라는 병’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이런 사람들, 아니 우리 자신일수도 있는 이런 증세를 지닌 이들을 위한 진단과 처방을 담고 있다.
저자는 남을 기쁘게 해주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환자’들을 심리, 감정, 그리고 습관이라는 3가지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남을 기쁘게 한다는 것이 달콤하게 들릴지 몰라도 실제로 그것은 많은 이들에게 심각한 심리 장애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남들에게 호의를 베풂으로써 부정적인 평가로부터 벗어 나려는 강박관념이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저자는 이런 증세를 지닌 환자들이 대개 성장기에 부모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은 사람들이라고 밝힌다.)

문제는 호의가 결점을 감춰주지도 않을뿐더러 자신을 순교자로 만든다고 해서 친구가 생기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좌절은 깊어지고 스트레스로 육체 또한 멍들어 가는데 이 상태가 되면 정말 ‘환자’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환자에게는 처방이 뒤따라야 하는데 저자는 이런 증세에서 벗어 나기 위한 지침들을 제시하고 있다. ‘21일 액션플랜’이라는 치유법을 통해 지혜롭게 거절하고 자기 자신을 찾아 가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소개한다.

한마디로 남을 위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나치면 병이라는 것이 브레이커 박사의 결론이다.
저자는 이를 피하려면 ‘계몽된 이기적 상태’에서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데 자신의 욕구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동시에 남의 욕구와 행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브레이커 박사의 처방을 따르면 ‘성인’이 될 수는 없을 듯 하다. 그렇지만 세상 살기가 한결 수월해 질 것 같기는 하다.
작가 데니스 윌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호인이니까 파트너가 잘 대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당신이 수의사니까 황소가 들이 받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
<조윤성 기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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