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읽는 재미, 보는 재미 ‘흠뻑’

2002-08-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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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오피코 도서관 개관...무더위 식히는 푸짐한 ‘문화여행’

언뜻 지갑을 엿봤을 때, 주황색 도서관 카드가 꽂혀 있는 사람은 다시 보게 된다. 크레딧 카드 넣고 다니기도 좁은 지갑, 도서관 카드를 가지고 다닌다는 얘기는 그만큼 도서관엘 자주 간다는 얘기일 테고 시간 들여 빌린 책을 베개 삼아 잠자는데 쓰지는 않을 테니 바쁜 와중에도 지식에의 갈증에 목말라 하는 모습이 어여뻐 보여서이다.

약 1년 반 동안의 공사를 마친 피오피코 코리아타운 도서관이 지난 8월 5일 다시 문을 열었다. 평소에도 조카들과 함께 시간 보내기를 즐기는 줄리 박씨는 지난 주말 방학을 맞은 제시카(13)와 재키(11)를 데리고 피오피코 도서관을 찾았다.

예전보다 4배는 넓어진 2만 평방 피트의 공간에서는 새 건물 특유의 냄새가 아직 가시질 않았다. 입구 로비의 태극 문양 대리석 장식은 이 도서관의 주인이 바로 우리들임을 되새겨준다. 하루 이용 고객 수는 대략 400명 정도, 그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이 한인이다.


포장 막 뜯은 새 컴퓨터가 모두 40대. 약 10만 권의 장서는 주제별로 질서정연하게, 누구라도 꺼내볼 수 있도록 개가식으로 꾸며져 있어 검색하기 편리하다. 특히 한국어 도서 코너는 매달 새로운 서적을 들여온 덕에 서점의 신간 서적 코너에라도 선 것 같다.

꼬마 이용객들을 위한 공간. 소꿉장난처럼 작은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책을 거꾸로 들고 보는 아가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그 앞을 지나던 미키 림 관장이 "어머 진희 또 왔네."하며 인사를 건넨다. 엄마, 정금숙(37·주부)씨와 함께 도서관을 찾은 진희(3)군은 아직 걸음마를 하기 전부터 피오피코 도서관을 자주 찾던 이용객. 정금숙씨는 일주일에 두 세 번 정도는 아들과 함께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어준다. 작은 무대와 객석에서는 이담에 북 리딩 행사와 인형극 공연 등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 행사가 마련될 예정.

LA 하이 스쿨에 다니고 있는 김영숙양은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도 바쁜 주말 오후, 도서관에서 어린이 책들을 정리하는 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한인 공동체를 돕는 일이라는 생각에 힘든지도 모른다며 땀을 훔치는 그녀는 이미 세상 살아가는 참 기쁨을 알고 있는 현숙한 여인 같았다.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청소년 열람실. 14대의 컴퓨터가 하나도 남는 것 없이 이용객들로 들어찼다. 책장을 넘기는 것보다 마우스를 클릭 해 가며 정보를 읽는 것이 친숙한 정보화 시대의 세대답다.

10만 권의 단행본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들이 준비돼 있다. 정기 간행물 코너에는 신문 가판대만큼 다양한 색색의 잡지들이 꽂혀있다. 한국에서 날아온 잡지들도 진열돼있어 정보의 풍요 속에 빠지니 행복하다. 정기 간행물 코너 앞에 마련된 라운지의 의자들은 커피숍 것보다 예쁘장하고 안락해 보인다. 의자에 깊이 파묻혀 두꺼운 안경 너머로 신문을 뒤적이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어찌나 한가로워 보이던지.

테이프로 녹음된 오디오북도 제법 여러 세트 마련돼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영국 BBC 아나운서들이 읽은 테이프를 뒤적거리던 줄리 박 씨는 흑인 여류 작가 마야 앤젤로우가 직접 읽은 ‘Song Flung Up To Heaven’을 집어들었다.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 때 자신의 시 마지막 구절인 "Good Morning"의 운을 힘있게 떼던 그녀의 목소리가 감동적이었다는 기억 때문이다.

DVD와 비디오테이프 코너. 언제 봐도 가슴 따뜻해지는 클래식 영화와 극장에서 개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최신 영화가 골고루 갖춰져 있고 취미 활동에 도움이 되는 교육용 비디오도 빼곡하다. 평소 미술 작품 감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줄리 박씨는 웬디 수녀의 ‘그림 이야기(Story of Painting)’ 비디오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PBS 방송에서 뻐드렁니 드러내며 친근하게 그림을 설명해주던 그녀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비디오로 확인할 참이다. 아니, 그런데 한국 영화 비디오 코너가 텅 비어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개관하기가 무섭게 다 대여해 나가서라고.


남지심의 우담바라, 시요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틱냣한 스님의 명상 서적, 한비야의 여행기... 읽고 싶은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 책, 저 책 빼들다 보니 두 팔에 담지 못할 만큼 한 보따리가 됐다. 3주간 읽을 수 있을 만큼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시 책꽂이에 꽂으면서 그녀는 행복하다. 아직 읽고 싶은 책이 이만큼 있다는 사실이.

피오피코 도서관의 주소는 694 S. Oxford Ave. Los Angeles CA 90005, 문의 전화 (213) 368-7647. 미드 윌셔 지역이라 항상 주차 공간을 찾기가 힘들었는데 60여대를 수용할 수 있는 새 주차장이 들어서 편리하다. 벨리데이션을 받아 가면 2시간 동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개관 시간은 월·수요일은 오전 10시-오후 8시, 화·목요일은 정오-오후 8시, 금·토요일은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이며 일요일과 공휴일은 문을 닫는다. 도서관 회원으로 등록하면 한 번에 10권의 책을 3주 동안 대여할 수 있고 그 책을 빌리기 원하는 희망자가 없을 경우, 전화로 3회까지 대여기간이 연장된다. 도서관 카드에 대한 문의는 (800) 643-LAPL, www.lapl.org.


글 박지윤 객원기자 사진 이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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