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막 찢는 ‘하드 록 액션’...MTV세대 영웅 탄생

2002-08-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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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XX’ ★★★½(별5개 만점)

문신이 잔뜩 그려진 팔이 드러난 소매 없는 셔츠를 입은 주인공 샌더와 늘 약물에 취한 듯한 모습의 러시아 여스파이 옐레나와의 체코 프라하 고급 식당에서의 대화. 옐레나: "당신 하는 일이 뭐예요." 샌더: "나, 미국 스파이야." 이 말을 듣자 옐레나가 깔깔대고 웃고 나와 관객들도 함께 웃었다. 뉴밀레니엄 수퍼 스파이 탄생의 순간이었다.

비디오게임과 MTV 세대의 새 액션 영웅으로 부상하고 있는 술집 경비원 출신 빈 디즐(35·’분노의 질주’)의 첫 주연 영화로 시종일관 고막을 찢는 하드록과 음향효과 속에 스크린을 찢어발기기라도 하겠다는 듯 액션이 판을 친다.

지금 상영중인 코미디 ‘오스틴 파워즈 인 골드멤버’가 007 시리즈를 풍자한 영화라면 이 영화는 이 시리즈의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 거칠고 사납게 재생한 007의 프랑켄스타인판. ‘골드핑거’ ‘나를 사랑한 스파이’ ‘문레이커’ ‘여왕 폐하의 007’ 등의 장면과 함께 이 시리즈의 교묘한 각종 무기제조자 Q까지 빌려다 썼다. 창의력 부재의 영화다.


샌더 케이지(디즐)는 훔친 코벳을 몰다가 높은 다리에서 강으로 떨어지면서 차 위에 서 있다 최후의 순간에 낙하산을 타고 착륙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팔아먹는 극단적 스포츠의 스타. 전과자인 그에게 어느 날 미 국가안보국 책임자 기본스(새뮤엘 L. 잭슨)가 찾아와 3진법에 따라 연방교도소에서 썩기 싫으면 국가를 위해서 일하라고 반협박조로 부탁한다(역겨울 만큼 애국을 내세운다).

그리고 기본스는 샌더를 작전에 내보내기 전 그를 콜롬비아 마약소굴에 떨구어 놓고 생사의 테스트를 시킨다. 샌더(일명 X로 제목은 그의 목 뒤에 새겨진 트리플 X)의 임무는 생화학 무기로 세계를 초토화시키려는 전 소련군인 출신 요기(마턴 소카스가 광대처럼 논다)의 프라하 본부에 잠입, 그의 일당을 일망타진하는 것.

요기의 본부에 들어가는데 성공한 샌더는 여기서 역시 요기의 음모를 분쇄하러 위장 잠입한 러시아 스파이 옐레나(이탈리아 공포영화의 대가 다리오 아르젠토의 딸 아지아 아르젠토는 본드 시리즈의 여자들처럼 연기 못하는 장식용)와 키스도 하면서 미·러시아가 의기투합해 요기 일당을 까부수고 세계도 구한다.

디즐이 쟁반과 스노보드를 타고 계단 난간과 설산을 질주하고 또 암벽을 타고 오르는가 하면 모터사이클을 타고 솔개나 된다는 듯이 고공 비행을 하면서 치고 박고 차고 쏘고 찌르고 난리법석을 떤다. 민머리에 근육질 체격, 문신과 쉰 목소리에 거지 차림을 한 신세대 액션 영웅을 보면서 "내 영웅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눈사태 등 컴퓨터 특수효과는 좋지만 전체적으로 액션이 만화 같다. PG-13이나 폭력이 심해 13세 미만은 보여주지 말도록. 로브 코헨 감독. Columbia. 전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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