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푸른 창공에서 맛 볼 자유가 있기에...

2002-08-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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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의 주말나기

▶ 비행기 조종술 배우는 에릭 유씨

중력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었던 인류는 훠이훠이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면서 금지된 것을 소망하기 시작했다. 새처럼 날아가고 싶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로부터 형상화되기 시작한 비행에의 꿈은 라이트 형제에 이르러 구체화되고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비행기 조종 좌석에 앉을 때마다 에릭 유(건축 설계사) 씨는 감탄한다. 이렇게도 아름다운 물체를 만들어 낸 인간은 위대하다고 말이다.

그가 비행기 조종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소망의 실현. 조종사 면허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갖기 위해 이수해야 하는 교과과정과 비행 실습을 토요일에만 하려니 남들은 서너 달에 마칠 것을 벌써 일년 째 하고 있다. 하지만 빨리 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으니 모든 비행이 즐겁고 의미 있다. 주말은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는 오직 그만의 시간. 이제 주말 비행은 포기할 수 없는 그의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에 경비행기 추락사고 소식을 전해들은 친구들은 그의 위험스런 늦바람에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 위험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으랴. 위험을 동반한 자유를 위해 그는 비행 전부터 랜딩 라이트에는 이상이 없는지, 기름에 혹시 물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꼼꼼하게 살핀다. 자동차의 몇 배는 됨직한 복잡한 계기판을 제법 능숙한 자세로 조정하고 점검을 마친 뒤 시동을 건다. 프로펠러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돌기 시작한다.


그가 조종하는 것은 4인용 경비행기. 밖에서 볼 땐 어린 시절, 독일, ,프랑스, 미국이라고 쓰여 있던, 어머니에게 졸라 타봤던 유원지 비행기처럼 작아 보이더니 안에 올라타니까 양 날개가 왜이리 넓은지. 다른 비행기 부딪히지 않게 이륙하는 지점까지 끌고 가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프로펠러의 회전이 빨라지면서 뭔가 대단한 변화를 일으킬 조짐을 보인다. 드디어 이륙. 붕 떠오르며 가까이 있던 차와 집들이 성냥갑만 해 지더니 고도를 높임에 따라 더욱 작아 보인다. 와인 한 잔 마시고 세상이 동전 짝 만해 보인다던 조르바의 심정이 헤아려 진다. 하늘의 구름은 만져질 듯 가깝게 다가오고 구름이 에워싼 산의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높이 올라와 세상을 관조하는 그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처럼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된다.

"Air press check". 그의 곁에 앉은 교관의 음성이 헤드폰을 통해 들려온다. 시속 120마일로 날고 있다지만 바람이 없는 날이라 비행기는 순풍에 돛단 듯 하늘을 주유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빅 베어.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니 푸른 호수에 배를 띄우고 호시절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동차로 2시간이 넘게 걸릴 거리지만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했다. 여행 떠나 멀리 느껴졌던 집과 차들이 점점 형체를 갖추더니 실물 크기로 바뀌는 순간, 비행기는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조종술만 배우면 그리 어려운 것도 없을 텐데, 나이 들어 시험을 치르기 위해 비행기 구조와 기상학까지 공부를 하려니 죽을 맛이다. 진작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큰 인물이 됐겠지 싶단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신성한 행위, 비행을 위해 이 정도 대가는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다. 항공 조종에 대한 문의는 KAAA(재미 한인 항공인 협회 909 596-2268)로 하면 된다.


<박지윤 객원기자>jy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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