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통음식 즐기고 문화도 체험하고

2002-08-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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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혜미씨 가족의 타이사찰 나들이

’인종 용광로’라는 별명에 걸맞게 LA에는 여러 인종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곳들이 참 많다. 노스 할리웃에 위치한 왓 타이 템플(Wat Thai of Los Angeles)은 타이의 신비한 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장소. 타이어로 왓(Wat)은 사원을 뜻하지만 타일랜드에서의 왓은 단순한 종교적 사원 이상을 의미한다. 한 인간의 모든 삶의 순간이 사원에서 시작되는 것은 물론, 그들의 영적 지도자인 수도승들이 기거하는 곳이기도 하고 법회와 종교적 모임이 열리며 어린 세대들에 대한 교육이 행해지는 곳이 바로 왓이기 때문. 한 마디로 그들에게 있어 왓은 삶의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순천 송광사와 선암사, 구례 화엄사로 딸들과 자주 나들이를 나서던 윤혜미씨 (61)는 지난 주말 노스 할리웃의 왓 타이 템플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국식 사찰과는 차이가 있지만 오랜만에 수도승들의 염불소리도 듣고 향냄새를 맡으니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대웅전 격인 우포사타 살라(Uposatha Sala). 입구에 사천왕상 같은 장승이 떡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보더니 손녀 클레어는 겁이 났는지 할머니 품으로 파고든다. 해학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천왕상처럼 왓타이를 지키고 서있는 장승도 찬찬히 뜯어보면 마을 입구의 천하대장군처럼 친근한 모습이다.


널찍한 경내에서는 향불을 피우며 기원을 올리는 사람들의 경건한 표정과 주황색 가사를 걸친 수도승들이 만트라를 외우며 깊은 명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입구 오른쪽에 그려져 있는 벽화는 우선 규모에서 사람을 압도한다. 결혼식 올리는 사람, 미역 감고 노는 이들, 논에서 일하는 사람, 차 마시는 사람, 사원으로 향하는 행렬, 탁발하는 수도승 등 여러 인간군상들이 윤회의 쳇바퀴를 도는 모습이 원색적인 색채로 표현돼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 사는 모습들과 어쩜 그렇게 똑같은지 웃음이 나온다. 법당 중앙에는 찬란한 빛을 발하는 대형 불상이 노란 가사를 입고 앉아 해탈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고 있다. 매일 오전 5시와 7시, 오후 5시 8시 네 차례 행해지는 예불 시간은 일반인들에게도 개방된다.

법당을 나와 경내를 둘러본다. 곳곳의 작은 사당에는 여래상, 도인상, 관세음보살상을 모셔 놓았고 단상 앞에는 신심 좋은 신도가 바친 제물이 향기롭다. 머리를 조아리며 기원을 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상을 깨고 본래로 돌아가려는 목적은 하나지만 가는 길과 방법은 같은 아시아 국가임에도 참 많이 다르다.

실로폰 동당거리는 듯한 타이 전통 음악 소리가 영혼의 문을 열어줄 듯 울려 퍼지는 가운데 뒤뜰의 푸드 코트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무 그늘이 시원하게 드리워진 예닐곱 개의 부스에서 풍기는 타이 전통 음식의 향이 강하게 코를 자극한다. 절에 와서 먹는 밥이니 절밥 아닌가. 양념도 변변치 않고 고기 하나 쓰지 않지만 한 주발을 가득 비울 만큼 맛깔스러웠던 절밥에 대한 기억을 안고 있는 윤혜미씨는 막내딸 윤선아양에게 뭐가 맛있겠냐고 자문을 구한다.

타이 식당에서 먹어봤던 친근한 메뉴 팟타이 (Pad Thai) 정도면 실패하지 않을 것 같아 주문을 했다. 종이 접시에 담아 주는 이곳의 음식들은 50센트에서 4달러, 평균 2달러 정도. 예쁜 접시에다 파슬리 장식해서 내 온다면 10달러는 족히 받을 수 있을 만한 맛이다. 새우 뎀뿌라, 피쉬 케이크, 소세지, 치킨 사타이(Chicken Satay), 파파야 샐러드 등 푸짐한 먹거리를 대하자니 방콕의 시장 뒷골목이라도 온 것 같은 느낌이다. 크레페와 비슷한 타이 식 디저트인 로티, 10개에 2달러 하는 바나나 튀김도 맛있다. 타이 아이스 커피와 아이스 티는 단돈 1달러. 식당에서 먹었더라면 40-60달러는 족히 나왔을 양의 음식을 16달러로 해결했다. 다른 타이 식당의 음식값에 비해 볼 때 평균 40-70퍼센트는 저렴한 가격이다.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푸짐한 음식을 앞에 두고 먹기 시작하자 콧잔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클레어도 타이 아이스크림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타이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문화적 포만감에 더해 맛있는 타이 음식으로 배까지 불러오니 뭘 더 바랄까. 사원을 나서는 모녀의 얼굴에서 니르바나를 읽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왓타이 사원 부속 불교 학교에서는 타이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언어 교육과 명상 클래스, 불교 철학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가는 길은 101 N. → 170 N. → Roscoe West에서 내려 Coldwater Canyon Ave.에서 좌회전. 오른쪽으로 Cantara St.과 만나는 곳에 있다. 주소, 8225 Coldwater Canyon North Hollywood CA 91605, 전화 (818) 780-4200. 사원은 매일 개방되지만 타이 음식 장터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들어선다.

오는 10일 (토) 왓 타이 사원에서는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문화 체험 이벤트, 타이 타이 쇼(Thai Thai Show)가 마련된다. 하늘하늘 거리는 타이 실크로 단장한 아가씨들이 벌이는 미의 제전을 시작으로 주먹과 발길질도 허락되는 타이 복싱 대회도 있을 예정. 화려한 전통 의상, 머리에 금탑을 얹은 것 같은 모자, 긴 손톱과 가면, 화려한 드레스로 단장한 무희들이 펼치는 전통 무용 공연은 흔치 않은 구경거리를 제공할 것 같다. 목공예품, 은세공품, 도자기 등 타이 전통 수공예품의 전시와 판매도 있으며 이국적인 향기가 가득한 타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음식 부스도 들어선다.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입장료는 따로 없다. 문의는 (714) 871-2566, Ram Association of USA로 하면 된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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