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블리’영국은 온통 “축제 큰마당”

2002-07-3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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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바인 일레인 정씨 유럽배낭 여행기 ①

오후 세시, 열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끝에 드디어 런던 히드로 공항에 내렸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물어 물어 시외버스 터미널을 찾아 표를 끊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7시25분 도착이니 역으로 마중 나오라고.

가방을 끌고 14번 스탠드에 섰다. 나랑 이번 여행을 동행하기로 하고 한국서 온 친구는 내심 심란한 모양이다. 우아한 지점장님과 사모님이 이게 웬 고생이냐며 궁시렁거린다.

미국 온지 23년만에 처음 타보는 시외버스다. 버스를 타자마자 자꾸 잠이 쏟아진다. 비행기 안에서 한 잠도 못 잔 탓이리라. 밖의 시골풍경을 봐야하는데… 자다 깨다 하면서 한쪽 눈을 살짝 뜨고 밖을 보면 푸른 초원에 살찐 양과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다.


유럽여행이 처음인 친구는 화려한 런던을 상상하고 왔는지 끝없이 펼쳐지는 시골풍경에 다소 실망하는 눈치다. 얼마 후 우린 친구가 마중 나오기로 한 톤튼(Taunton)역에 도착했다. 창 밖을 통해 시외버스 터미널에 마중 나온 동양여자를 발견하곤 “병화다” 소리치고 손을 흔든다. 드디어 한국과 영국 그리고 미국에 흩어져 살던 세 친구가 만나 얼싸안았다.

8시간의 시차 때문인가? 밤새 잠이 안 온다. 교회 종소리가 3시를 알린다. 영국은 해가 늦게 지고 일찍 뜬다. 엊저녁 밤 10시까지 훤하더니 새벽 4시에 벌써 어둠이 완전히 가시고 화사한 아침기온이 감돈다. 창 밖을 통해 바로 앞의 200년은 족히 넘은 듯한 교회의 탑이 조명을 받아 아름답다. 붉은 벽돌의 지붕들과 햇빛의 조화도 멋지다.

아까부터 창 밖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친구가 한마디 던진다. “얘, 내 40평생에 이건 정말 색다른 경험이야.” 마침 우리가 영국을 방문중일 때가 영국 여왕의 즉위 50주년을 기념하는 주블리(Jubilee)였기 때문에 온통 영국 전체가 축제분위기였다. 곳곳에서 축제마당이 펼쳐지고 있었다.

브루나이 공화국에서 온 중국인 친구 츄와 함께 던스턴 캐슬(Dunster Castle)에 가서 한나절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마인드헤드(Mindhead)라는 마을에 들렀다가 왓체(Watchet)라는 해변마을에 갔는데 그곳에서도 흥겨운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소위 동네 카니벌인데 아주 색다른 풍경에 우리 모두는 넋을 잃고 구경을 했다.

윌배로(Wheelbarrow)라고 하는 손수레에 특이한 복장을 한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한사람은 수레를 타고 한사람은 수레를 끌면서 동네를 한바퀴 돌고 먼저 오는 팀이 이기는 게임이었는데 동네에 있는 선술집(Pub)마다 들러서 부어주는 맥주를 다 마시고 돌아와야 하는 게임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 복장을 한 사람, TV에 나오는 캐릭터를 흉내낸 사람들, 심지어는 축구선수인 베컴을 흉내낸 사람, 소방수 등 코믹하고 다양한 분장을 하고 손수레 타고 선술집에 가서 맥주를 실컷 마시고 제일 먼저 오는 팀이 이기는데 돌아올 때는 취해서 코끝이 벌겋다. 그야말로 보는 사람이 더 즐겁고 신나는 구경을 우린 운 좋게 따라다니며 볼 수 있었다. 영국의 대축제 기간에 방문하여 기대하지도 못한 진풍경을 보너스로 보게 되어 우린 너무나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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