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명나는 북소리를 위하여…

2002-07-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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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나기

월드컵 끝나고 나면 무슨 재미로 사나. 이런 고민이 어디 스캇 김씨(33·광고 대행사 근무)만의 것이었을까. 지구상 모든 한국인들을 하나로 묶었던 월드컵.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욱 감동적인 월드컵으로 인해 지난 한 달 우리는 참 많이 행복했었다. LA 붉은 악마 응원단으로 곳곳을 누비며 응원을 주도했던 스캇 김씨의 6월은 감동으로 가득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온 몸에 소름이 쪽 끼칠 정도로 황홀감에 빠지곤 한다.

그가 처음부터 가슴팍에 북을 메고 응원단으로 활동을 했던 건 아니다. 폴란드와의 예선전. 골드컵 대회에서 잔뜩 기대를 하고 관전을 했다가 번번이 깨지는 한국팀을 보고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게임을 지켜보자니 머리털이 설 것 같고, 그는 차라리 일찍 잠자리에 드는 편을 택한다. 하지만 꿈에서도 한국팀에 대한 걱정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졌어, 졌단 말야.” 한국팀이 대패하는 악몽을 꾼 그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중얼거리며 확인사살 하는 기분으로 뉴스를 틀었다.


그런데, 아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우리 태극 전사들이 강호 폴란드를 2대0으로 물리쳤다니. 그는 아내와 얼싸안고 팔짝팔짝 하늘로 뛰어오르며 한국팀의 선전을 기뻐했다.


미국과 한국의 경기가 펼쳐지던 날. 그는 한국팀의 선전을 기원하며 저녁 8시부터 한인들이 모여서 응원한다는 가든 스윗 호텔로 향했다. 일찌감치 모여 든 400여 명의 한인 응원부대는 얼굴에 불꽃을 그려 넣어 시선을 집중시키는 그를 앞으로 내몰았고 그는 졸지에 팔자에 없는 응원단장이 되어 응원을 이끌게 됐다.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긴 했지만 잘 싸워준 한국 대표팀에 대한 한인 응원단의 열기는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포르투갈과의 16강전이 벌어지던 날. 알배네 주차장 앞으로 향한 그는 빨간 색 티셔츠를 입고 태극기를 흔드는 한인들을 앞에 대하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축구가 뭐길래 이 야심한 시각에 이 인파가 모여들 수 있단 말인가.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친 뜨거운 열기가 태평양 너머까지 전달되었던 걸까. 축구 강국 포르투갈을 1대0으로 이겨 16강 진출이 결정되던 순간, 응원단들은 너나할 것 없이 서로를 얼싸안고 뜨겁게 환호했다.

이탈리아와의 결전 때는 한국일보, 라디오서울과 합동으로 코리아타운 갤러리아에서 응원을 이끌었다. 징과 북, 꽹과리를 두드리며 수많은 인파를 하나로 묶은 두레패 회원들과 그는 자연스럽게 합류가 됐다. 안정환 선수가 역전골을 넣어 8강 진출이 결정된 직후 한인들은 거리거리 태극기를 흔들며 평화의 행진을 벌였다.
미국 살면서 이토록 신났던 적도, 한국 사람임이 자랑스러웠던 적도 다시없었다. 스페인과의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에퀴터블 빌딩 주차장에 모여든 한인들의 행렬은 그 끝이 보이질 않았다. 승부차기로 4강 진출이 결정된 그 감격의 순간을 어찌 잊으랴.

터키와의 3·4위전 응원을 이끌기 위해 스테이플스 센터 중앙에 서서 붉은 물결을 바라보던 그는 온 몸에 짜릿한 전류를 느꼈다. 응원단장 한다고 돈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아무 것도 생기는 것 없는 일에 일찍이 이렇게 열심히 뛰어다닌 적이 또 있었을까. 하지만 “축구로 인해 지난 한 달 동안 응원했으므로 진정 행복했었다”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는 9월에 열릴 예정인 남북축구와 LA에서 열릴지도 모를 태극전사들의 경기에 대비해 합동응원 준비에 열심이다. 보다 조직화된 합동 응원을 준비하기 위해 그는 주말이면 두레패에 나가 북 치고 징을 울리며 시간을 보낸다. 지난 월드컵 때 보여주었던 한인들의 단합된 힘이 다시 한 번 재현되기를 바라는 그의 북 두드리는 손길에 힘이 실린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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