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글렌데일 집단장 … 행복한 나날

2002-07-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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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 코미디언 마그릿 조

마그릿 조. 할리웃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들 가운데 그녀만큼 크게 성공한 케이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수많은 코미디 상을 휩쓸고 내셔널 네트워크 시트콤인 All American Girl의 주인공으로 떠올랐지만 어느 날 갑자기 쇼가 무산되면서 그녀 역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가 우리들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개봉된 “Notorious C. H. O.”는 그녀가 37개 도시를 순회하며 펼쳤던 스탠드 업 코미디 공연 실황 가운데 시애틀 공연을 그대로 필름으로 옮긴 것이다. 시애틀은 다른 어떤 도시보다 그녀의 열성 팬들이 많은 도시이며 동성연애자 인구 역시 많다. 여자이며 동양인이라는 두 가지 면에서 마이너리티인 그녀는 이성연애자들이 주류인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인 동성연애자들의 권익을 위해 사방팔방으로 애쓰고 있다.

항상 그녀가 얼굴 표정까지 요상하게 만들어가며 흉내를 내는 그녀의 어머니가 영화 도입부에 나오는데 어쩜 그렇게도 똑같은 모습인지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다. 그처럼 남의 흉내를 잘 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세세하게 대상을 관찰했다는 의미. 좋은 연기자뿐만 아니라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도 관찰은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다. 그녀는 공연 중에 포르노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들을 거침없이 쏟아 붓는다. 망설임 없이 속사포처럼 터져 나오는 표현들이 천박하게 느껴지기는커녕,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한다.


조각처럼 아름다운 배우들이 판을 치는 할리웃. 인물이 받쳐주나 몸매가 좋나. 그런 그녀가 당당하게 수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자기 목소리를 드높이는 모습은 우리들의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든다.

주류 사회에서 인정받고 자신의 목소리를 드높일 수 있는 비법은 다름 아닌 마그릿 자신이 되는 것이라는 걸 그녀는 수업료를 톡톡히 치르고야 깨달았다.
그녀는 최근 구입한 글렌데일의 집을 단장하느라 4개월 째 주말 시간을 온통 쏟아 붓고 있다.

1924년에 지어진 집이라 손볼 곳이 여간 많은 게 아니지만 그녀의 손을 지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집이 많이 어여쁘다. 뒤뜰에 정원을 꾸밀 만한 공간이 있어 흙을 만지며 나무와 꽃을 사다 심고 토닥거려주면서 가슴 가득한 행복감을 느낀다. 인테리어 전문 샵에 가 이불이며 그릇을 사다가 있어야 할 곳에 채워 넣는 것도 즐겁다. 선 머슴 같은 외모의 그녀가 이렇게 섬세한 취미를 갖고 있는 줄 짐작이나 했겠는가.

금요일 저녁때면 친구들과 함께 코리아타운에 와서 외식을 한다. 순두부, 갈비가 즐겨 먹는 메뉴.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는 좋아하는 약식과 떡을 사러 한국 마켓에 간다. 완전 잡종이긴 하지만 5살 짜리 레이프와 1살 짜리 강아지, 브론윈드를 데리고 하이킹 하는 것도 그녀의 주말 스케줄 가운데 하나. 화려함과 소란스러움으로부터 벗어나 조용히 지내는 주말을 통해 그녀는 재충전된다.
<박지윤 객원기자>
jy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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