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걷기 예찬’

2002-03-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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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기는 삶의 예찬, 생명의 예찬, 깊은 인식의 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현대문학 펴냄

점심식사후면 가볍게 회사 주위를 산책하는 동료에게 왜 걷느냐고 물었더니 "건강도 건강이지만 무엇보다 살아 있는 것들이 내뿜는 생명력을 맛볼수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봄이 왔다지만 사무실 안에서 그 나른함과 따스함을 느끼기는 힘든 일. 그러나 짧은 걷기를 통해서나마 길가의 나무와 꽃들, 그리고 인간들이 발산하는 생명력과 활기를 접하는 것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자신의 산문집 ‘걷기예찬’(김화영 옮김, 현대문학)에서 이렇게 설파한다. 이 책은 자동차가 일상생활의 여왕으로 군림하게 되면서 육체는 남아도는 군더더기 장식으로 전락하고 있는 시대에 대해 통렬한 질책을 날리고 있다. 걸으면서 느끼는 땅의 부드러운 감촉, 천천히 눈과 귀를 채워주는 거리 혹은 자연의 풍경과 소리들…. 이런 것들을 자동차나 비행기를 탔을때는 경험할수 없다.

브르통은 걷는다는 것을 육체적 행위라기 보다 정신적 행위라 본다. 왜냐하면 "걷는동안 여행자는 자신에 대해서, 자신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서, 혹은 자신과 타인들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게 되고 뜻하지 않은 수많은 질문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기 때문"이다.


이 책속에는 장 자크 룻소, 패트릭 리 퍼모, 헨리 소로등 일생동안 걸어서 많은 여행을 한 인물들의 걷기 예찬이 곳곳에 등장한다. 룻소는 청년시절 스위스의 솔로투른에서 파리까지 보름동안 혼자서 걸어 여행을 했던 때를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꼽는다. 이들은 여럿보다 혼자 걷는 것이 더 즐겁고 덜 고독하다고 입을 모으는데 그 이유는 걷기가 바로 내재적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생각하고 사유하는 훈련에 걷기만큼 좋은 것은 없을 듯 하다.

또 저자는 걷기를 "집, 즉 어떤 거처를 향유하는 것의 반대"라고 규정한다. 걷는 사람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속에 거처를 정하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의 부자요 주인됨을 뜻한다고 본다. 이런 인식을 지닌다면 긴 도보여행은 물론 간단한 산책도 기적같은 축복임을 깨달을수 있게 된다는 것이 걷기 예찬론자들의 주장이다.

걷기는 문명속에서 종속물로 전락해 가는 몸의 주인됨을 확인하는 행위다. 옮긴이의 표현마따나 "그래서 걷기 예찬은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 인식의 예찬"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어가다 보니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신발끈 질끈 동여맨후 무작정 걷고 싶다는 충동이 고개를 든다.

<조윤성 기자>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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