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지 풍류에 반해 오롯한 사랑 25년

2002-03-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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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람 주말나기

▶ 장수경씨 (한지공예가)

한 방울만 닿아도 순식간에 물기가 확 퍼질 만큼 섬세하지만 신방에 들은 신랑 신부를 훔쳐보기 위해서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도 뚫기 쉽지 않은 창호지(한지). 어디 그 뿐이던가. 겹겹이 붙이면 화살도 관통하지 못할 만큼 강해지는 창호지를 이용해 우리 조상들은 장수들을 위한 갑옷을 만들었다고 한다.

성공회 전도사로 늘 몸과 마음이 바빴던 장수경씨(69·한지공예가)는 젊은 시절부터 차분히 노후를 준비했다. 그의 은퇴 준비가 노후를 위한 투자는 아니었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주어질 때 젊은 시절부터 하고 싶었던 것들을 향유하며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그녀는 일찌감치 한지 공예 클래스를 찾았던 것이다.

한지 공예에는 선조들의 지혜와 멋이 담겨 있다. 플라스틱과 양은이 개발되기 훨씬 전이었건만 우리 여인들은 반지고리며 보석함을 곱게도 만들어 딸자식 시집보낼 때 싸주기도 했다. 같은 시간 사랑방에서 남정네들이 새끼를 꼬아 만들었던 바구니가 힘 좋은 머슴처럼 질박한 멋을 풍기는 반면 한지 공예 작품들은 화려하고 예쁘장한 것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아씨의 모습 같다.


무형 문화재 상기호씨 문하에서 자잘한 소품들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던 그녀의 한지 공예는 어느덧 대형 장식장을 제작하게 될 만큼 일취월장했다. 허연 속지에 풀을 바르고 신비로운 문양을 뜨며 알록달록한 색지를 오려 붙이면서 지내온 25년 세월 동안 그녀는 한 순간도 우리 것에 대한 오롯한 사랑을 놓아 본 일이 없다.

그녀가 이제껏 만든 작품들을 보자니 전통미에 대한 심미안이 뜨이는 느낌이다. 팔각형 과반은 나무로 만든 것보다 더 튼튼하고 예물 상자는 안에 담길 보석이 제아무리 금강석이라 할 지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정도로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일상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등갓, 쟁반, 부채, 바둑판은 물론 받기가 황송할 정도로 예쁜 반상, TV를 올려놔도 그만인 장식장 등 한지를 이용한 공예품의 목록은 끝이 없다. 약 15달러의 재료비로 일주일 정도면 소품 하나를 뚝딱 만들 수 있다고 하니 보다 많은 이들이 이 멋진 취미를 공유했으면 싶어진다.

그녀가 옛 여인네들의 풍류와 멋을 전수하고 싶은 마음에 주부들을 위한 주말 한지 공예 클래스를 운영한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그녀의 문하생 10여 명은 오는 6월로 다가온 전시회를 앞두고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목표가 있는 삶은 얼마나 아름답던가. 한지공예에 관심있는 사람은 (714) 835-4878로 연락하면 된다.

<박지윤 객원기자>jy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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