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 우리 귀여운 멍멍이 데려가요"

2002-03-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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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들리 애완견 입양 행사장을 찾아

영특해 보이는 뾰족 코에 그 긴 털을 갈기갈기 휘날리며 멋지게 달리던 래시의 모습을 기억하지 않는 이가 얼마나 될까. 황금색 털에 얼굴이 폭 파묻힌 귀여운 표정의 벤지, 황소만 한 몸집의 듬직한 베토벤, 얼룩덜룩 젖소가 떠오르는 101마리의 주인공 달메이션, 얼굴 꽉 눌러 놓은 모습이 보기만 해도 웃음보를 터뜨리게 하는 불독. 귀여운 모습의 강아지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커다란 행복감을 준다. 이 이유만으로도 강아지들은 모두 천국에 갈 것(All dogs go to heaven)이라는 명제는 참이다.

"생일 선물로 뭘 해줄까" 하는 엄마의 물음에 로렌(7)은 기다렸다는 듯이 "강아지!"라 답한다. 아이 둘 키우는 것만으로 여유 있게 차 한 잔 마실 틈조차 없는 그레이스 리(36·주부)씨였지만 벌써 강아지를 갖게 된 양 두 눈 반짝이는 딸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마이클(3) 역시 덩달아 신이 나는지 멍멍 짖는 시늉까지 한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 100미터 전부터 익숙한 꼬마 아가씨의 체취에 꼬리를 흔들며 뛰어나와 반겨주던 하얀색 스피츠 ‘해피’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안고 있는 그녀는 자녀들의 감성 개발에 강아지가 큰 몫을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이 하나 낳는 것만큼 책임이 막중한 강아지 키우기가 고민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 우리 강아지 데리러 가자" 하고 선뜻 승낙을 했던 데는 이런 이유가 컸다.


지난 주말 버뱅크의 우들리 공원에서는 각 지역별로 운영되고 있는 남가주의 애완동물 구호기구들이 합동으로 마련한 강아지 입양행사가 있었다. 쇠창살 속에 갇혀 있던 강아지들이 드넓은 초원에 나와 초봄의 산뜻한 공기를 호흡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길거리에 버려진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구출한 애니멀 셸터에서는 강아지에게 소독약을 뿌리고 밥을 주며 보호하게 된다. 이 기간에 주인이 나타나면 괜찮지만 주인을 찾지 못한 개들이 문제이다. 일정기간 보호한 후에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셸터에서는 입양신청을 받기 시작한다. 차우차우나 허스키, 몰티스, 골든 리트리버 같은 좋은 품종의 잘 생긴 개들, 그리고 어린 강아지들은 입양을 시작한다는 사인을 내 걸기가 무섭게 금방 데려가지만 늙고 못생긴 데다가 불구인 개들은 아무도 쳐다보지 조차 않는다.
아침 일찍 서둘렀던 보람이 있었는지 천진난만하게 노는 강아지들이 아직 꽤 있었다. 첫 눈에도 여러 피가 섞인 잡종이지만 그게 뭐 그리 대수일까. 로렌과 마이클은 첫눈에 이 바둑이가 마음에 드는 지 쓰다듬고 보듬으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멋진 모습의 골든 리트리버가 황금색 털을 휘날리며 서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데 꼬마 바둑이가 길을 비켜주질 않는다. 마음을 읽을 줄 아는 강아지들. 로렌과 마이클이 자기를 예뻐하는 지 벌써 간파를 한 게 분명하다.

그녀는 인연이라는 것을 믿는다. 어쩌다가 그 많은 날 가운데 오늘 길을 나섰으며 하필이면 이곳으로 발길을 향했을까. 입양 절차를 밟는 그녀를 바라보는 강아지는 빨간 머리 고아 소녀 애니처럼 다가올 삶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항상 함께 떠오르는 ‘해피’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데 로렌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나왔던 도로시의 강아지 이름 ‘또또’를 들먹인다. 그렇고 보니 복슬거리는 털, 귀여운 눈에 어울리는 이름인 것도 같다.

이제 새 식구가 하나 늘었다. 끼니때면 밥 챙겨 줘야지, 아침저녁으로 산보도 시켜줘야 하고 목욕도 시켜야 하는 건 물론, 아프다고 끙끙대면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한 생명 키우는 책임감의 비중이 결코 가볍지는 않지만 앞으로 수많은 나날들, 또또가 가져다줄 기쁨을 생각하면 이는 아무 것도 아니다. 행사장에서 또또가 밤에 잠잘 침대와 먹이, 비스킷을 구입하자니 해산을 앞두고 아기 침대와 옷을 사던 때의 행복감이 밀려온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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