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칸의 축제’(Festival in Cannes)

2002-03-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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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디 앨런만큼이나 말이 많은 헨리 재글롬 감독(’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은 인간 마음의 기상도를 총명한 감각으로 잘 읽을 줄 알아 호감이 간다. 그는 사람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온갖 상념과 느낌의 미묘한 파장까지도 알뜰살뜰하니 건져내 위트 있고 지적이며 때로 신랄하게 대사로 표현한다.

재글롬은 이번에는 영화제가 한창인 1999년 5월의 칸으로 카메라를 들고 가 기록 영화식으로 이 영화제의 안팎과 할리웃 사람들과 그들의 야심 그리고 각기 세대가 다른 세쌍의 사랑을 묘사했다. 상업화, 저속화해 가는 칸 영화제와 할리웃 풍자영화이자 러브스토리인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목표를 이루려고 안간힘을 쓰는 영화인들을 풍자할 때는 터무니없이 우습고 매섭게 날카롭다가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얘기할 때면 자상하니 연민하는 가슴이 된다.

감미로운 샹송이 흐르는 가운데 록 허드슨, 리즈 테일러, 페데리코 펠리니, 찰리 채플린, 킴 노박 및 소피아 로렌 등이 과거에 참가했던 칸 영화제 흑백필름이 나오는 시작부분부터 영화제의 화려한 분위기를 북돋운다. 유럽의 명장 빅토(맥시 밀리안 쉘)는 이제 누구도 안 써주는 공룡인데 왕년의 빅스타로 이제는 나이 먹은 아내 밀리(아눅 에메)를 버리고 젊은 여인과 사귄다.


밀리를 자신들의 영화에 출연시키려는 사람이 할리웃 배우에서 극본가로 변신을 시도하는 앨리스(그레타 스카키)와 유명 제작자 릭(론 실버). 릭은 이번 일이 성사 안되면 제작자로서의 생명이 끝날 판이라 필사적으로 밀리의 출연 허락을 받아내려고 한다. 그런데 밀리는 앨리스의 작품을 더 좋아하는데 밀리를 놓고 서로들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앨리스와 릭은 가까워진다.

나머지 다른 한쌍은 연극배우 출신으로 소품영화에 나온 신인 여우 블루(제니 가브리엘)와 릭의 보조자 배리(알렉스 크레이그 맨). 여기에 딜메이커를 자처하며 칸을 헤집고 다니면서 너스레를 떨어대는 사기꾼 스타일의 대머리 콧수염 캐즈(잭 노만)가 끼여들어 기막힌 코믹 터치를 가미한다.
흥청망청 화려하나 표리부동한 영화의 속사정과 거짓말과 허풍과 즉석에서 말을 바꾸는 영화인들의 부푼 이고와 허황된 모습과 함께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을 우습고도 사려 깊고 또 애잔감 있이 묘사한 매력적인 영화다. 연기들도 뛰어난데 특히 아눅 에메의 현명하고 노련한 연기와 그레타 스카키의 그것이 좋다.

피터 보그다노비치, 윌리엄 샤트너, 할리 한터, 제프 골드블룸, 페이 더나웨이 등이 캐미오로 나오고 ‘붐!’과 ‘장밋빛 인생 등 샹송이 로맨틱하고 아름답다. 칸 관광도 마음껏 할 수 있다. PG-13. Paramount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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