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쉬리(Shiri)

2002-02-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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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년작으로 우리나라 영화 흥행 신기록을 수립한 스케일 큰(제작비 28억원, 촬영기간 6개월) 간첩 잡는 액션영화다. 감독과 각본은 ‘은행나무 침대’를 만든 강제규. 아놀드 슈와르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탤론이 나오는 미국 액션영화 뺨치게끔 콩볶듯하는 총격전과 액션이 판을 치는 오락물로 조국 분단과 액션과 로맨스를 잘 섞은 멜로 드라마다. ‘검은 일요일’ ‘히트’ 그리고 존 우 액션영화의 부분들을 차용한 흔적이 보이고 한국 영화가 너무나 미국 영화 같아(적어도 외형적으로) 오히려 생경한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뛰어난 특수효과와 기술 그리고 눈부신 스턴트를 동원한 빠르고 박진한 액션에 조국 분단의 고통과 슬픔 또 못 이룰 사랑이 뿜어내는 쓰라린 미련을 절묘하게 배합해 센티멘털한 액션영화로 성공시켰다. 시대상황을 얘기한 눈물까지 흘릴 수 있는 액션영화다.

첫 부분은 1992년 북한에서의 특수부대 8군단 요원 훈련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여 저격수 이방희를 포함한 요원들이 실제 사람들을 훈련대상으로 사용, 찔러 죽이고 쏴 죽이는 이 부분은 믿어지지도 않고 또 지나치게 잔인하다.


그 뒤로 5~6년 후의 서울. 잇단 요원 암살사건이 발생하면서 비밀 정보기관 OP의 두 베테런 수사관이자 친구인 유중원(한석규)과 이장길(송강호)이 사건수사를 맡는다. 둘은 이 저격사건의 주범이 이방희라는 것을 확신하나 방희가 종적을 감춰 궁지에 빠진다. 그리고 사건 수사과정에서 OP의 정보가 누설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중원과 장길은 서로를 의심하기까지 한다. 중원에게는 수족관을 경영하는 아름다운 연인 이명현(김윤진)이 있는데 제목의 쉬리나 명현이 중원에게 주는 키싱 구라미 등 영화는 물고기를 조국 분단과 두 사람의 상황을 암시하는 상징으로 쓰고 있다.

한편 방희의 뒤를 따라 남파된 반란군인 특수요원 박무영(최민식) 일행은 대낮에 군인들이 호송하는 가공할 폭발력을 가진 신개발무기인 액체폭탄 CTX를 탈취한 뒤 OP 본부에 협박전화를 걸어 거금과 비행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시범 케이스로 도심의 대형 빌딩을 박살낸다.

그런데 이 같은 테러사건이 발생하고 있을 때는 남북화해 무드가 한창 무르익고 있는 때여서 OP 요원들을 더욱 당황케 하는데 방희와 무영 그리고 중원간의 피가 튀는 생사의 대결은 한창 남북 축구가 열리고 있는 잠실운동장에서 벌어진다(빌딩이 박살나고 도심에서 대규모 총격전이 발생하는 데도 보도진 모습이 보이지 않고 또 OP외 정부 고위인사들의 대책 숙의의 모습이나 담화 발표 등 현실적인 장면을 생략한 것은 실수).

액션과 함께 조국 분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남북의 위정자들과 북쪽의 기아현상을 외면한 남쪽의 허영과 사치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철저한 액션영화여서 그것이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액션영화가 저지르는 흔한 실수인 비논리적인 부분이 더러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동족끼리 서로 저렇게 싸우고 죽여야 하는가 하고 생각을 하니 새삼 조국 분단에 가슴이 아파 온다.(감독 인터뷰 9면 참조). R. Samuel Goldwyn. 페어팩스 시네마(323-655-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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