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음악을 보고 느끼고 배운다

2002-02-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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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 "현장 체험"

자녀들의 기호와 취향은 부모에 의해 받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율곡 이이라고 태어날 때부터 서화에 능했을까. 사임당 신씨가 몸소 난을 치고 논어·맹자 읽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 역시 평범한 사대부에 머물렀지, 조선 유학을 집대성한 최고의 성현 자리에는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학자 집안인 아우렐리우스 코타 가문 출신의 어머니 아우렐리아가 호메로스와 플라톤의 저술을 읽어주지 않았다면 카이사르 역시 하나의 평범한 로마 개선 장군에 머물고 말았을지 모른다. 자녀들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하려면 부모가 고전 음악을 아끼는 수밖에 없다.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최근 뮤직 센터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5-11세의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Symphonies for Youth)를 마련했다. 주말 오전 10시 보통 음악회를 열기에는 다소 이른 시각이지만 부모님의 손을 잡고 공연장 문을 들어서는 꼬마 청중들의 표정이 제법 진지해 보인다.


자녀 음악 교육에 대한 열의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옥찬현(47·자영업)·미셸(37·주부)씨 부부는 제니퍼(10)와 로라(9) 두 딸을 데리고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에 참석했다. 제니퍼와 로라는 현재 피아노와 성악 레슨을 받고 있으며 합창단원으로 무대에 서 본 경험도 있는 음악도.

어쩌면 음악 감상의 시작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턱시도와 드레스를 챙겨 입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건지도 모른다. 검은 색 벨벳 공주 드레스, 머리에는 비단 리본, 타이즈에 검은 구두까지 제대로 차린 어린이들의 모습이 깜찍하다. 남자 어린이들이라고 빠질소냐. 턱시도에 빨간 나비 넥타이를 맨 것이 행동까지 의젓해 보인다.

콘서트는 오전 11시 시작이지만 10시부터 공연장의 문을 개방한 것은 어린이들이 클래식 음악을 가까이서 그리고 흥미를 가지고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뮤직 월(Music Wall)은 악기들이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직접 만져보고 느껴볼 수 있는 코너. 어린이들은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대며 타악기, 관악기, 건반악기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소리를 내는지를 체험한다. 관심이 없으면 어른들도 잘 모를 오케스트라의 악기 구성은 커다란 차트에 크레파스로 색칠을 해가며 재미있게 공부했다.

LA 필하모닉의 단원들이 직접 악기를 시범으로 연주하는 뮤직 워크숍도 인기 만점이었다. LA필의 케빈이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지켜본 제니퍼와 로라는 엄마 아빠를 졸라 바이올린 레슨을 받고 싶어진다. 어디 음악뿐일까. 미래의 발레리나와 프리마돈나들을 위한 댄스&티어터 워크숍도 열려 자연스러운 무대 위에서의 움직임과 노래 부르기를 함께 익히기도 했다. 이야기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동화 코너에도 꼬마 친구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딩동댕. 차임벨이 울리며 곧 공연이 시작됨을 알린다. 지휘자 야수오 쉬노자키가 등장하자 어린이들은 뭔가 시작된다는 기대감에 신난다고 손뼉을 쳐댄다. 그의 등뒤에는 마에스트로(Maestro),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바이올린 주자들의 등뒤에는 스트링(String), 피콜로와 오보에 주자의 초록색 티셔츠에는 (Wind)라고 적혀 있어 한눈에도 관악기와 현악기를 구별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눈에 띤다. 저녁이면 턱시도와 까만 드레스를 입고 말러와 숀베르그를 연주하는 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티셔츠를 입고 나와 이렇게 봉사해준다는 것이 무척 고맙다.

오늘 연주 곡목은 오페라 ‘피터 그라임즈’로 유명한 벤자민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오케스트라 가이드(Young Person’s Guide to the Orchestra)’. 연주와 더불어 지금 어떤 악기가 연주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MC, 존 드 랜시 (John De Lancie, 배우, 스타트랙의 Q)의 안내가 중앙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조금은 멀게, 그리고 어렵게도 느껴질 수 있는 고전음악이 만져질 듯, 호흡할 듯 가깝게 느껴진다. 새 소리, 천사의 노랫소리 같은 관악기의 연주를 비롯해 클래식, 특히 심포니가 주는 장중함을 느낄 수 있는 훌륭한 공연이었다.

다음 연주 곡목은 덴마크 작곡가인 칼 닐슨의 알라딘 스윗 (Aladdin Suite). "알라딘이 어느 나라 사람일까요?" 하는 MC의 질문에 여기저기서 "저요, 저요!" 난리가 났다. "램프를 문지르니까 누가 나왔죠?" "지니요." 조금이라도 선생님 눈에 띄고자 손을 흔들어대며 대답 열심히 하는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시절 우리들의 모습을 어쩜 그렇게 빼다 박았던지.


객석을 한 번 돌아본다. 음악을 듣겠다고 엄마 무릎에 앉아 젖꼭지를 문 아가, 칭얼대기 시작하는 아가의 입을 막느라 안간힘을 쓰는 엄마도 보이고 연주 시작한 지 몇 분 됐다고 벌써부터 하품을 해 대는 어린이, 노트에 낙서를 하거나 게임보이 꺼내들고 비디오게임을 하는 어린이도 눈에 띤다. 그런가 하면 몸을 꼿꼿이 세우고 음악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소녀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미래의 어느 날, 카네기 홀에서 베토벤의 심포니를 듣는 그들은 오늘의 공연을 참 많이 추억할 테지. 그리고 고전음악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해준 부모님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를 전할 것 같다.


♠ 앞으로 남은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2월 9일: ‘오케스트라의 진화 (The Evolution of Orchestra)
▲3월 30일: 퍼쿠션 등 타악기의 리듬을 집중적으로 들어보는 ‘뱀(Bam)’ ▲5월 11일: 춤출까요 (Shall We Dance?)

♠ 오전 10시부터 다양한 이벤트 (Pre-Concert Fun)가 마련되고 공연은 오전 11시에 시작된다. 티켓은 10-12달러. 뮤직 센터 박스오피스, 티켓 매스터 아웃릿, 또는 티켓 매스터, 전화 (213) 365-3500 또는 www.laphil.com으로 예매할 수 있다. 문의는 전화 (323) 850-2000. 공연 장소는 뮤직 센터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 (Dorothy Chandler Pavilion, 주소 135 N. Grand Ave. 그랜드와 1가 코너)이며 지하 주차 7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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